야구는 스포츠맨십과 페어플레이를 유난히 강조하는 종목이다. 게다가 동방예의지국인 국내 프로야구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도 많이 있다.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기 전 모자를 벗어 심판에게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나 어린 투수가 고참 타자에게 몸에 맞는 볼을 던졌을 때는 정중하게 사과를 하는 장면은 메이저리그에서는 볼 수 없다.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야구에는 규약에는 없는 암묵적인 약속이 존재한다. 이른바 불문율이다. 상대가 비신사적인 행위로 이 불문율을 어겼을 때는 빈볼로 응징을 하는데 서로 시각이 다를 경우 벤치 클리어링으로 번지기도 한다.
# 장면 1. 2011년 8월2일 잠실 두산-KIA전.
1-4로 뒤진 두산의 2회말 공격에서 양의지가 KIA 선발 트레비스의 6구째를 받아 친 공이 큰 포물선을 그렸고, 양의지는 홈런을 확인한 뒤 천천히 1루 쪽으로 발걸음을 뗐다. 그러자 트레비스는 "왜 홈런을 치고 빨리 베이스를 돌지 않느냐"고 격분, 잠시 언쟁을 벌였다. 동서양의 야구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야구계에서 한 동안 의견이 분분했다.
# 장면 2. 2013년 5월21일 잠실 두산-넥센전.
넥센 5번 강정호가 '5회 8점'리드 상황에서 3루 도루를 감행해 성공했다. 큰 점수 차로 앞서 가면서 3루까지 '무관심 도루'를 하는 것은 비신사적이라는 것이다.
네티즌들이 시끄럽다. 야구 불문율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빚어진 갈등이다. 수치로 규정할 수 없는 불문율을 어겼느냐는 정서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되느냐의 문제다. 그것이 바로 '동업자 정신'이다.
넥센이 12-4로 점수를 벌리기 직전을 보면 6-1로 앞서다 6-4까지 쫓긴 상황이었다. 두산 마운드가 일찌감치 무너졌지만 넥센 선발 밴헤켄의 구위도 좋지 않았다. 일방적인 경기가 아닌 타격전 양상으로 전개될 조짐을 보였다. 염경엽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나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모두 5회까지 8점 차도 안심할 수 없다고 느꼈다.
결국 염경엽 감독은 강정호에게 3루 도루 사인을 냈다. 곧바로 두산이 '응징'했다. 두산 투수 유명준은 유한준의 엉덩이를 맞혀 1차 목적을 달성한 뒤에도 만루에서 실점을 감수해 가며 김민성의 머리 쪽으로 향하는 빈볼까지 던졌다.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다.
10점 차 리드도 안심할 수 없는 최근 야구 트렌드를 감안하면 두산의 과잉 대응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빈볼도 경기의 일부이고, 벤치 클리어링도 마찬가지다. '10계명'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이 가장 잘 안다. '동업자 정신'을 서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프로'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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