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피나 바우쉬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마기 마랭(62)이 있다. 2009년 69세로 세상을 떠난 바우쉬와 더불어 유럽 현대무용의 오늘날 지형에서 쌍벽을 이루는 안무가다. 춤과 연극을 결합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피나 바우쉬가 춤에 소리와 리듬, 시각적 요소, 그밖의 다양한 것을 끌어들여 무용극에 가까운 '탄츠테아터(Tanz Theater)'를 내놓았듯, 마기 마랭의 '누벨 당스'(Nouvelle Danse-새로운 무용)는 몸짓, 대사, 소리 등 인간을 표현하는 모든 것을 활용하고 문학과 영화와 연계함으로써 연극적인 성향을 짙게 드러낸다.
지난해 리옹 댄스 비엔날레를 뒤흔들었던 마기 마랭의 걸작 '총성(Salves)'이 마기 마랭 무용단의 내한공연으로 6월 5~7일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라간다. 그동안 한국 무대에 소개된 그의 작품은 1997년 세계연극제가 초청한 '메이 비(May B)'부터 2003년 시댄스(SIDance) 축제가 초청한 '박수만으로 살 수 없어'까지 다섯 편이다. 첫 내한 무대의 메이 비'부터가 충격이었다. 새뮤얼 베케트의 부조리극을 바탕으로 만든 이 작품은 아름다운 무용수에 대한 통념을 깨버렸다. 뚱뚱한 옷을 입고 매부리코 분장을 하고 온 몸에 진흙을 바른 그로테스크한 무용수를 등장시켜 현대인의 절망과 부조리한 인간상을 표현한 걸작이다.
10년 만인 이번 내한공연에서 선보이는 '총성'도 연극 팬들이 더 좋아할 것 같다. "사회 전반에 스며 있는 비관주의에 대한 저항"(마기 마랭의 설명)이라는 이 작품은 고통스럽고 격렬하다. 매우 정치적이고 연극적이며 한 편의 재난영화 같은 작품이다. 캄캄한 무대에 섬광이 비치고 총성이 울리는 가운데 7명의 무용수들은 바삐 들락거리며 식탁을 차리기도 하고 필사적으로 탈출을 꾀하지만 매번 예기치 못한 공격에 상황은 끊어진다. 인간의 트라우마를 재생시킨 듯한 70분의 공포 끝에 한 편의 추상화를 보는 듯한 아름다운 엔딩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초연 직후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마기 마랭이 지닌 모든 재능의 총합이자 매일 폭력이 난무하는 병든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마기 마랭은 "예술 자체가 정치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용 전문지 월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예술은 동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과 사람을 탐구하는 것이며, 무용이 세상을 통째로 바꿀 수는 없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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