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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바람난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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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바람난 삼대'

입력
2013.05.2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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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뒷면의 벽과 커다란 가림판 사이의 공간은 성인 한 명이 겨우 통과할 만하다. 그러나 배우가 재빨리 복장을 바꿔 입기에는 족하다고 이 연극은 말하는 듯하다. 거기는 이를테면 마법의 통로다. 그곳을 지나가면 연기자는 복장은 물론 말투까지 적어도 한 세대를 뛰어넘는다.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가 사는 아파트에서 각자의 애인과 함께 벌이는 소동을 유쾌하게 그리는 소극(farce)이다. 형식으로는 2인극이지만 극중 등장 인물은 모두 6명이다. 남녀 배우 각 1명이 극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통로를 들락거리며 다른 세대의 인물로 순간 이동하는 것이다.

제목대로 이들은 모두 바람 나 있다. 아내와 사별한 할아버지이면서, 회사의 중견이면서, 동시에 대학 초년생인 남자는 노인학교에서 만난 할머니와, 회사의 여자 후배와, 지금 사귀고 있는 아가씨와 아파트에서 단 둘이 있게 된다. 각자가 틈틈이 애인을 불러와 수작을 붙이는 행태는 전형적인 슬랩 스틱이다. 그러나 배우들의 능란한 변신술에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란 말까지 붙여 주고 싶고, 객석과 천연덕스럽게 교감하는 대목은 '현혹적'이라 부르고 싶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연극적 활력이다.

무대가 더없이 자연스러운 것은 이 작품이 마당극적 어법을 원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맨 앞줄 가운데에 앉아 있는 두 관객은 영락없이 화분이 돼야 한다. 배우가 창틀에 놓인 화분에 물을 준다며 들고 있던 분무기로 객석에 물을 뿜어대지만 그 상황마저도 즐겁다. 옷을 치워야겠다며 벽 쪽으로 옷을 가져가면 관객은 고분고분하게 옷걸이가 된다.

힙합을 통한 교감의 순간은 극적이기까지 하다. 일반적인 대화는 물론 음담까지 랩으로 난사되면 공연장은 숫제 힙합 클럽으로 변한다. 배우가 앞서 메기는 소리를 관객이 능란하게 받아 넘기는 상황까지 펼쳐지는 걸 보면 힙합은 이미 한국인의 일상에 뿌리 내렸다는 생각마저 든다. 취직 못한 손자가 나와 래퍼처럼 마이크를 움켜 잡고 "당신의 꿈은 뭐냐, 삼성맨"이라고 외치면 객석은 마치 분풀이라도 하듯 "삼성"을 외친다. '지난해 2인극 페스티벌 인기상, 대학로 최고의 배우들이 펼치는 완벽한 연기 앙상블'이라는 선전 문구가 과장되지 않다. 민복기 작ㆍ연출로 6월 30일까지 소극장 시월에서 공연한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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