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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5월 22일] 야스쿠니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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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5월 22일] 야스쿠니 신사

입력
2013.05.2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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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 직후인 1869년 도쿄 복판 '황거(皇居)' 북쪽의 구단(九段)에 도쿄 초혼사(招魂社)가 세워졌다. 260여 년 동안 일본을 통치한 도쿠가와(德川) 막부와의 전쟁에서 '천황을 위해 숨진' 영혼을 섬기는 전국 초혼사의 으뜸이었다. 세이난(西南) 전쟁 2년 뒤인 1879년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의 야스쿠니(靖國) 신사로 개명됐다. 그것이 지금은 묘하게도 일본 국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으뜸 신사가 됐다.

▲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숱한 전사자의 영령을 합사했으나 별 문제가 없었다. 패전 직후 국가신도의 핵심장치라는 이유로 잠시 철폐가 고려됐을 뿐이었다. '상징 천황'으로 격하된 히로히토(裕仁) 천황의 참배도 거듭됐다. 그러다 1978년 10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비롯한 A급 전범 14명의 합사 이후 많은 게 바뀌었다. 히로히토 천황이 참배를 끊었다. 전쟁책임을 그들에게 떠넘긴 마당에 '호국의 신'으로 섬길 수야 없었다.

▲ 이듬해 4월 일본 국내에서 야스쿠니 논쟁이 시작됐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1985년 8월15일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총리의 참배였다. A급 전범 합사 전에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일본 현직 총리의 참배는 있었지만, 8ㆍ15라는 상징적인 날의 공식 참배는 그가 처음이었다. 더욱이 그는 참배에 앞서 이른바 '자학 사관'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역사 정당화 주장을 폈다. 그 결과 한중 양국의 반발이 불붙었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졌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와 비교했다. 어불성설이다. 신사 참배는 추모가 아니라 사자의 영을 '가미(神)'로 떠받드는 의례다. 묘나 납골당, 위패조차 없이 한 덩어리로 뭉쳐 떼어 나눌 수도 없는 신을 섬기는 행위다. 오직 천황 편 혼령만 섬기는 편향에서 확인되는 국가신도의 종교색채도 여느 국립묘지와는 천양지차다. 야스쿠니 신사 아래 해자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국립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역 이야기라면 또 몰라도.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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