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차는 우리나라 보통 사람들의 '로망'이었다. 소형 아파트로 첫 내 집을 마련한 서민들이 30~40평대 중형아파트를 꿈꾸듯, 소형차로 생애 첫 내 차를 가진 서민들은 넓고 안락한 중형차를 갖고 싶어했다. '중형차는 중산층의 상징'이란 말도 그래서 나왔다.
그런데 최근 중형차가 흔들리고 있다. 전체 승용차의 절대비중을 차지했던 중형 세단의 비중이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는 것. '중산층 몰락의 증거'라는 시각도 있고,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자동차 문화의 전환'이란 다양한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20일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4월까지 쏘나타 K5 SM5 등 중형(엔진 배기량 1.6~2.0리터) 승용차는 총 9만2,981대가 생산돼 전체 세단형(해치백 포함) 승용차 시장에서 48.5%를 차지했다.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며 한때 세단 시장의 60%대까지 점했던 것을 감안하면, '몰락'에 가까운 실적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꿈으로 여겨졌던 중형세단이 이처럼 위축되는 이유는 뭘까.
첫 번째 해석은 중산층의 붕괴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은 20~30대에 엔트리카(생애 첫 차)로 소형차를 택했다가 30~40대에 소득이 늘고 직장에서 승진을 하면 중형차를 갖는 게 일반적 패턴이었다"며 "중형차를 탄다는 건 한마디로 중산층이 되었다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대형차 비율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소형차와 경차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은 서민들이 그 만큼 중산층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소득도 양극화 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모닝, 스파크, 레이 등 1.0리터 미만의 경차 점유율은 2006년 12.9%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7.3%까지 상승했다. 반면 대형차는 10.6%로 큰 변화가 없어, 결국 자동차 시장도 '대형과 소형ㆍ경차'로 양극화되고 있는 것이다.
양극화는 올해 들어 더욱 가속화 하는 분위기다. 지난 4월까지의 중형 세단 점유율은 처음으로 40%대인 48.5%로 떨어진 데 반해 경차는 19.3%로 올랐고 대형차도 11.9%로 성장했다. 중형차 운전자들이 소형차나 경차로 옮겨갔거나, 소형이나 경차서 시작한 운전자들이 더 이상 중형차로 옮겨 가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두 번째 해석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다. 중형세단 판매는 줄었지만 대신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 판매가 늘어난 것을 보면, 중형세단의 붕괴를 무조건 중산층의 몰락이나 양극화로만 볼 수는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웃도어 활동 수요가 늘면서 그에 맞춰 각 사들이 SUV 차량을 내놓았고, 중형세단 수요의 상당수가 SUV로 옮겨 갔다는 이야기다. 현대차 관계자는 "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국산의 경우 갤로퍼와 쌍용의 코란도 정도가 전부였지만 최근엔 국산 SUV만 10여 종에 이른다"며 "중상층의 몰락보다는 여가 인구 증가, 삶의 방식에 따른 변화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96년 5.8%에 불과했던 SUV의 승용차 시장 점유율은 2006년 27.6% 급성장했고, 올 들어 지난 4월까지의 점유율은 30%에 달한다.
인구나 의식구조의 변화로 보는 시각도 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핵가족화로 인해 식구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굳이 중형차를 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 특히 연비나 세금 등을 감안하면, 중형차의 매력은 더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더 이상 소비자들은 자동차를 신분이나 과시의 수단으로 보지 않고 있다. 중형차의 감소는 자동차 선택기준 자체가 실용화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안세환 IBK증권 선임연구원은 "중산층의 몰락과 그로 인한 자동차 소비의 양극화가 글로벌 트렌드인 것은 맞지만 그것만으로 해석하기는 곤란하다. 여전히 소비자들은 자동차에 많은 돈을 들이고 있기 때문에 중형세단의 위축은 소비자 인식변화와 업계의 SUV라인업 강화 등이 맞물린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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