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주인을 못 찾은 비자금 121억원이 국고로 귀속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이 돈은 2003년 검찰의 현대비자금 수사 때 압수된 것으로 "돈을 찾아가라"는 공고에도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대검 중수부는 현대그룹이 150억원을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현 민주당 의원)에게 건넨 정황을 포착해 기소했으나 2006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한동안 돈을 갖고 있던 무기중개상 김영완씨 역시 내 돈이 아니라며 150억원 중 일부인 121억원을 검찰에 제출했다.
▲ 당시 현대비자금 수사는 세 갈래였다. 현대로부터 금강산 유람선 카지노사업 허가 청탁과 함께 박 전 장관은 150억원,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은 200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또 하나는 총선을 앞두고 선거자금으로 권 전 고문에게 스위스은행 계좌로 3,000만 달러를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이 가운데 3,000만 달러 건은 송금 관련 핵심 인물인 현대상선 김충식 사장의 미국 체류 등으로 수사가 중단됐다.
▲ 비자금 사건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3명이다. 자살한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과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김영완씨다. 정 회장은 김씨로부터 두 사람이 돈을 달라고 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이씨를 통해 줬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정 회장의 지시에 따라 두 사람에게 돈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두 사람의 요구를 정 회장에게 전달했고 돈을 받은 뒤에는 관리를 맡았다고 밝혔다. 반면 박 전 장관과 권 전 고문은 의혹을 철저히 부인했다.
▲ 1심과 2심 재판부는 두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했으나 대법원에서는 엇갈렸다. 권 전 고문은 유죄가 인정돼 3년5개월 실형을 살았고, 박 전 장관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씨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대법원은 권 전 고문 건의 경우 이씨 진술이 "구체적이고 상세하다"고 판단했고, 박 전 장관 건은 "사리에 맞지 않고 일관성이 없다"고 봤다. 비자금 150억원의 주인이 박 전 장관이 아니라면 이씨와 김씨가 공모해 빼돌렸다는 얘기가 된다. 진실은 당사자들만이 알 것이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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