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건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길, 그 길이 곧았다면 앞으로도 나는 곧은 길을 걸을 것이요, 그 길을 달리는 내 차 또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05년 5월 21일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에서 폐암 진단을 받고 입원 치료 중이던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 마지막 말을 남기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한국 자동차의 산 증인이자 현대자동차를 세계 유수의 기업으로 끌어올린 그가 멈추지 않을 자동차를 그리며 향년 77세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같은 시각 미국 앨러배마주 몽고메리시는 축제에 휩싸였다. 정세영회장의 꿈이었던 현대자동차 앨러배마 공장이 준공된 이날, 지역 신문은 준공식 행사를 무려 52페이지에 걸쳐 특집으로 다뤘다. 앨러배마 공장 홍보 영상과 함께 우아하고 날렵한 자태의 소나타가 무대에 오르자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비롯해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 양국 참석자들이 일제히 박수로 화답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인 고인은 1928년 강원 통천에서 태어나 고려대를 졸업한 후 57년 현대건설에 입사, 태국지사장을 지냈다.
67년 12월 현대자동차 설립과 동시에 사장에 취임한 후 기능공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이후 32년 동안 자동차 외길을 걸었다. 공장 건설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1호차 '코티나'를 조립해 생산해냈고 미국 '포드'사와 합작이 난관에 부딪치자 74년 한국 고유 모델인 '포니'를 개발해 세계 자동차업계를 놀라게 했다.
국민소득 500달러 시절, 이탈리아 최고 디자이너에게 거금 120만 달러를 지불하는 대가로 한국 디자이너 10명을 공동 작업에 참여시켜 기술을 배우게 했고 당나귀처럼 작지만 강한 힘을 가졌다는 의미로 '포니'라 이름 붙인 것이다.
첫 출시된 포니의 가격은 228만원으로 변두리 아파트 한 채 값이었지만 당시 인기를 누리던 기아자동차의 '브리사'를 제치고 내수 시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이 때 정세영은 '포니정'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87년 현대자동차 회장에 취임한 이후 독자 엔진을 개발하며 쏘나타, 엘란트라, 엑센트, 아반테를 출시하는 등 최고경영자로서 불도저처럼 전진하던 그에게 운명의 99년이 다가왔다.
99년 봄 현대그룹은 경영권 승계를 놓고 치열한 권력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까운 인물을 주총에서 이사로 선임했다는 이유로 형 정주영의 노여움을 산 정세영은 그 해 3월 정 명예회장의 청운동 자택으로 불려가 "몽구가 장자야. 장자한테 자동차회사를 넘겨주는 게 뭐 잘못됐어?"하는 한마디에 아무 말 없이 그 동안 걸었던 자동차 인생을 접었다.
이후 아들 몽규와 함께 현대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긴 정세영은 건설인으로 변신해 제2의 인생을 열었지만 이 해 발병한 폐암을 극복하지 못하고 6년 후인 2005년 5월 21일 생을 마감했다. 회고록으로 32년 자동차 인생을 정리한'미래는 만드는 것이다'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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