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남성이 사격장에서 불법으로 가져간 엽총으로 과거 내연녀였던 50대 여성을 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사격장은 기초적인 확인절차도 무시한 채 엽총을 빌려 줬고 총기분실 사실도 늑장 신고하는 등 부실한 총기관리 실태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19일 경기경찰청과 하남경찰서 등에 따르면 18일 오전 9시 12분쯤 하남시 미사동 한 공터에서 이모(62)씨의 쏘렌토 차 안에서 이씨와 내연관계에 있던 박모(52)씨가 총에 맞아 숨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씨는 차 뒷좌석에서 왼쪽 가슴에, 박씨는 조수석에서 왼쪽 등에 총탄을 맞은 채 발견됐다. 차 안에서는 엽총과 탄피 2발도 함께 발견됐다.
경찰조사 결과 이씨가 사용한 엽총은 17일 오후 1시 5분쯤 화성시 경기도종합사격장에서 빌린 다른 사람의 엽총으로 확인됐다. 이 사격장은 경기도 산하 경기도체육회에서 수탁 운영하는 민간사격장으로 11개 종류의 권총과 5개 종류의 엽총 등 300여 정의 총기와 탄환을 보관하고 있으며 청원경찰 4명이 2인 1조로 교대 근무하며 총기와 탄약고를 관리하고 있다.
클레이 사격 동호회 회장이었던 이씨는 친분이 있던 경기도종합사격장 인근 총포사 사장에게 "총을 빌려 사격을 하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했고, 이에 총포사 사장은 총기와 탄환을 관리하는 사격장의 청원경찰에게 "이씨가 지금 올라가니 엽총을 대여해달라"고 부탁했다. 청원경찰은 별다른 의심 없이 총을 내줬다.
청원경찰은 총기를 사격장에 보관한 소유자들에게만 내줘야 하지만 소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도 이씨에게 총을 빌려줬다. 더욱이 기록대장에 신원과 총기번호를 적지도 않았다.
빌려간 총기는 외부로 반출할 수 없으며 당일 오후 6시 전까지 반납해야 한다. 하지만 이씨는 엽총을 들고서 그대로 사격장을 빠져나갔고, 청원경찰은 총기가 반납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17일 오후 6시쯤 확인하고도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경찰에 신고해 화를 키웠다.
휴대전화 위치 추적 상 마지막으로 파악된 박씨의 위치와 시각이 17일 오후 6시 23분 구리시 수택동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분실신고가 조금만 빨랐어도 참사를 막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이 경찰 설명이다. 총기분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이씨의 거주지역인 서울 송파를 비롯해 박씨의 근무지인 구리와 남양주 일대를 수색했지만 휴대전화가 모두 꺼져 있어 이들을 찾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사격장 운영과 관리를 맡은 경기도체육회 관계자는 "회원들이 가끔 사격을 마치고 커피를 마시고 늦게 반납하기도 해 직원이 경찰에 늦게 신고한 것 같다"며 "자세한 내용은 현재 조사 중이다"고 말했다.
경찰관계자는 "이씨가 내연관계였던 박씨와 헤어진 뒤에도 연락하며 협박해 고소된 상태였던 점 등으로 미뤄 이씨가 박씨를 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며 "청원경찰과 사격장 운영자의 법 위반 사실이 드러날 경우 처벌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남=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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