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에 함부르크 대학의 유대계 학생 에른스트 아이징은 지도교수로부터 다음과 같은 문제를 받았다. 한 줄로 늘어선 입자가 오직 바로 옆에 있는 입자하고만 상호작용을 한다면 전체적인 상태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아이징이 이 문제를 풀어서 얻은 결과는 전체적인 상태는 연속적으로만 변한다는 것이었다. 종이 띠에 물을 한 방울 떨어뜨리면 그 자리로부터 종이가 점점 젖어가는 모습을 연상하면 되겠다. 이런 결과는 우리에게 익숙하고 별반 새로울 것도 재미있을 것도 없다. 특별한 현상을 기대했던 아이징은 실망하고, 연구 결과를 정리해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이런 형태의 모형은 언제나 상태가 연속적으로 변한다고 결론지었다.
아이징의 결론은 섣부른 것이라는 것이 훗날 밝혀진다. 20년 후 예일대학의 노르웨이 출신 이론물리학자 라스 온새거는 아이징이 풀었던 문제를 바둑판과 같은 2차원에서 풀었더니 전체적인 상태가 한 순간에 변하는 특이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사실 이 모형은 아이징이 풀었던 1차원의 경우만 제외하고는 2차원 이상에서는 항상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나중에 알려졌다. 이 업적으로 온새거는 훗날 노벨 화학상을 받게 된다. 비록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이 모형을 처음으로 연구했던 사람이 아이징이었으므로 이 모형은 아이징 모형이라고 부른다.
온새거가 발견한 것처럼 어떤 임계상태에서 물질의 상태가 완전히 변하는 것을 '상전이'라고 한다. 단순한 퍼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아이징 모형은 상전이 현상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제다. 상전이는 물리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우주에서 물질이 생겨나는 것, 초전도 현상, 결정 구조의 변화 등 수많은 분야에서 나타난다.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상전이를 볼 수 있다. 온도가 변해서 임계 온도에 이르면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고, 끓어서 수증기가 되는 것, 그리고 그 반대 방향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모두 상전이 현상의 예다. 상전이는 물리학적인 상태에서 비롯된 개념이지만 최근 들어 생물학이나 사회학에도 적용되어서, 금융 시장 등을 설명하는 데에도 적용되고 있다.
상전이 현상은 매우 흥미로운 성질을 많이 보여주는데, 그 중에서도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일부에서부터 서서히 상태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한 순간에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해버리는 것은 상전이의 중요한 특징이다. 예를 들면, 철에 자성이 생기거나 없어지는 일은 아이징 모형으로 잘 설명되는 현상인데, 이때 철의 일부가 먼저 자성을 갖기 시작해서 점점 전체가 자석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전체가 자석이 된다. 분명히 입자들은 바로 옆에 있는 입자하고만 상호작용을 하는데, 멀리 떨어져 있는 입자들하고도 동시에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내가 물리학자라서 그런지, 요즘 연일 언론을 통해 오르내리는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한 사건들을 보면, 마치 상전이가 일어나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지금까지도 분명 오만한 갑과 당하는 을이 늘 있었을 텐데, 왜 이런 사건들이 전혀 관계없는 분야에서 한꺼번에 갑자기 터져 나오는 걸까? 우유 대리점과 술 대리점이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고, 대기업 상무와 제빵회사 회장이 만만한 사람들을 괴롭히기로 의기투합했을 리도 없는데 말이다. 마치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직접 상호작용하지 않는 철 원자들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정렬해서 자석이 되듯이, 본질은 같지만 내용은 전혀 다른 사건들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만약 이런 현상이 일종의 상전이라면, 이는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임계점에 도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즉, 갑의 오만과 탐욕이 도를 넘었고, 을이 견딜 수 있는 것도 한계에 달해서, 도저히 지금처럼은 더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경상대 물리교육과 조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