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남매를 어엿하게 길러낸 뒤 소일거리 삼아 농사를 짓던 김모(당시 67세ㆍ여)씨는 2010년 8월 "좋은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아보라"는 자식들의 권유를 받고 국내 최고의 대학 병원인 서울대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검진 결과, 평소 건강을 자신했던 김씨는 자신이 이름도 생소한 '뇌동맥류'를 앓고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됐다.
뇌동맥류는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 일부가 꽈리 모양으로 부풀어 혈관벽이 얇아지는 증상. 그 자체로 심각한 통증 등을 수반하지는 않지만 그냥 뒀다가 뇌출혈의 원인이 될 수 있어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는 게 의사의 말이었다. 이에 김씨는 자식들과 상의해 같은 병원 신경외과에서 코일 색전술(뇌동맥류 속에 백금 코일을 삽입해 혈류를 차단하는 치료법)을 받기로 했다. 코일 색전술은 두개골을 직접 여는 수술보다 간편하고 회복이 빠른 시술의 일종으로 성공률이 9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유명한 뇌동맥류 치료법 중 하나다.
그러나 김씨는 수술 직후 뇌동맥류가 치료되기는커녕 좌반신을 쓸 수 없게 됐다. 의료진이 시술 과정에서 뇌동맥류의 혈관 부분에 코일을 삽입하다가 코일 끝부분이 뇌동맥류의 벽을 뚫었고, 그 결과 뇌동맥류가 터져 뇌출혈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뇌출혈 예방을 위해 받았던 시술이 오히려 뇌출혈을 일으킨 것이다.
이에 김씨와 자녀들은 병원에 배상을 요구했지만 병원 측은 "뇌동맥류 파열로 인한 뇌출혈은 해당 시술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가피한 합병증이므로 의료진 과실로 볼 수 없다"며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합의를 보지 못한 김씨 가족은 결국 이듬해 2월 담당 의사와 서울대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병원은 오히려 "치료비와 시술비 등 1,300여만원을 내라"며 맞소송을 제기했다.
2년이 넘는 긴 소송이 이어진 끝에 결론이 났다. 판결이 확정 되면 김씨 가족은 병원으로부터 손해배상금 1억3,000여만원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부장 조휴옥)는 김씨 가족이 서울대병원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의료진은 김씨에 대한 코일 색전술 중 코일을 넣는 과정에서 코일 루프가 동맥류의 벽을 뚫고 나가게 했고, 그 결과 뇌출혈이 발생해 김씨에게 좌측 편마비가 온 사실이 인정된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19일 밝혔다. 서울대병원은 김씨에게 지금까지 치료비와 향후 치료비 및 위자료 등 1억3,0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내용이다.
재판부는 '불가피한 합병증'이라는 병원 측 주장에 대해 "뇌동맥류 파열이 당시 의료수준에서 최선의 조치를 다하더라도 나타날 수 있는 합병증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만 시술 자체의 위험성과 김씨가 고령인 점 등을 감안해 병원 측 배상 책임을 40%로 제한했다. 병원이 김씨를 상대로 청구한 치료비에 대해 재판부는 병원의 과실 책임 40%를 제외한 800여만원만 내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병원 측 책임을 40%로 제한한 것은 김씨에게 60%의 과실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해당 시술 자체가 가진 위험성과 김씨의 건강 상태 등 외적 조건 등을 감안하면 병원의 책임이 어느 정도 줄어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