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의 박인협(27) 연구원은 매주 '불금(불타는 금요일)'이면 밤마다 서울 홍대 앞 클럽으로 출근한다. '하늘로부터 벼락이 떨어진다'라는 뜻의 '어 볼트 프롬 더 블루'(A Bolt From The Blue)라는 헤비메탈 밴드의 보컬인 그는 무대 위에 올라 강한 쇳소리로 사람들을 달군다.
이정환(30) 연구원도 '빅마마' 멤버 신연아가 거쳐간 인하대의 '꼬망스'라는 밴드 보컬 출신이다. 이노우에 신이치(49) 수석 연구원도 대학 시절 밴드 보컬이었고, 수 만 곡을 보유한 음악 마니아다. 여기에 사물놀이 상쇠 출신, 반도체 전문가까지….
평범한 직장인이라 하기엔 너무도 특이하고, 너무도 톡톡 튀는 취미를 가진 이들은 바로 LG전자 미디어음향팀 멤버들이다.
이들의 취미와 이력은 사실 현재 하고 있는 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스피커와 앰프 등 전자음향기기를 연구 및 개발하는 것. 그래서 이들은 스스로를 '소리를 쫓는 사람들'이라 부른다.
사실 전자 대기업에서 음향관련 업무는 변방에 가깝다. TV 냉장고 스마트폰 등 IT 가전기기가 중심이다 보니, 음향기기는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LG전자 미디어음향팀의 성과는 가히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다.
이들은 전면이나 측면 아닌, 꼭대기에서도 분수처럼 소리를 뿜어내는 기발한 발상의 스피커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국내외 특허를 냈다. 그리고 이를 상용화한 제품 'BH9530TW'가 마침내 이달 말 국내에 출시된다. 이 제품은 앞서 유럽에서 먼저 선보였는데, 등 현재 오디오전문지로부터 "9개의 스피커가 한 조를 이뤄 극장 같은 소리를 낸다"며 극찬을 받기도 했다.
팀 중심에 차현승(42) 전문위원이 있다. 임원 대우를 받는 그는 일본 소니에서 8년 간 음향 기술을 연구하며, 외국인 직원으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스터클래스에서 소니 음향기술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오디오 장인이다. 이런 그를 눈 여겨 본 LG전자 임원의 권유로 자리를 옮겼다.
회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차 위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한마디, "한국은 음향 기술의 황무지"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는 "음향 기술이 발달한 소니는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지만 한국에서는 할 게 많다고 생각했다"며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를 들려주고 싶어서 이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차 위원은 LG전자에 오자마자, 소니에서 자신을 키운 스승을 영입했다. 이노우에 수석이다. 이노우에 수석은 소니에서 몇 명 되지 않는 최고 개발자에게만 수여하는 'MVP'칭호를 받은 인물.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해보자"는 권유를 받은 스승은 기꺼이 제자의 밑으로 들어갔다.
이후 차 위원은 '소리 드림팀'구성에 들어갔다. '소리를 잘 듣는 사람들이 좋은 소리를 만든다'는 음향철학에 따라, 밴드 출신 등 지금의 팀원들을 뽑았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드림팀은 9.1 채널 스피커와 평면TV에 붙여서 사용하는 얇은 사운드바 스피커 등을 만들었다.
실제로 경기 평택시 LG전자 사이언스파크 내 오디오실에서 들어 본 9.1 채널 스피커는 극장으로 착각할 만큼 웅장하고 화려한 소리를 들려줬다. 이달 말 국내 출시 예정인 높이 35㎜에 불과한 사운드바 'NB4530A'역시 크기를 의심할 만큼 강력한 음향을 재생했다. 차 위원은 "TV가 얇아지면서 소리가 희생됐다"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사운드바 스피커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 위원의 꿈은 LG전자 내 음향연구소와 오디오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꼭 수백만 원대 고급 오디오가 아니어도 좋은 소리를 들려주는 대중적 스피커를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평택=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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