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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금지에 다시 덧난 5·18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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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금지에 다시 덧난 5·18 상처

입력
2013.05.19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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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꼴 저꼴 안 볼라믄 내가 어서 죽어야 쓴디. 그때 죽은 사람들이 더 부럽당께…."

19일 오후 전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5ㆍ18 민주화운동 유족 정정순(83)할머니의 목소리는 축 가라앉아 있었다. 전날 33주년 기념식이 열린 국립 5ㆍ18 민주묘지에서 만났던 정 할머니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놓아 부르고 집에 간 뒤에도 원통하고 분한 마음에 잠을 못 잤다고 했다.

1980년 당시 군홧발에 짓밟히고 모진 고문을 당한 뒤 9년 동안 후유증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 흑백사진 속 아들(당시 36세)에게 밤새 노래를 불러줬다고도 했다.

"기념식장서 노래 한 곡(임을 위한 행진곡) 못 부르게 해서가 아니여. 5ㆍ18을 여전히 홀대하고 왜곡하면서 사람들 기억 속에서 지워지게 하려고 하는 것이 억울한 것이여."

물기 어린 목소리를 신음처럼 토해 내던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그는 "우리가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은 그날의 비극이 미래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며 "5월 광주를 바라보는 정부 쪽 사람들의 시야가 너무 좁은 것 아니냐"고 울먹였다.

정 할머니의 울음 섞인 말은 "아직도 5ㆍ18이 보이지 않는 권력의 통제망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서러운 분노에 가까웠다.

실제 국가보훈처는 '기념식장에서 주먹을 쥐고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게 부적절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제창을 거부할 뿐, 왜 유족들과 5월 단체 등이 그 노래를 부르고 기억하려는지 애쓰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는 사이 보수성향의 인터넷커뮤니티엔 5ㆍ18을 폄훼하는 글들이 난무했고, 종합편성채널들의 왜곡 방송까지 이어졌다. 이 때문에 유족들 사이에선 "아직도 사과 한 마디 하지 않는 전두환 전 대통령 등 학살 책임자들을 유족 앞에 무릎을 꿇리고 사과를 받아내야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격앙된 목소리가 나온다.

2013년 5월 광주는 또 하나의 생채기만 안은 채 막을 내려가고 있다. 유족들은 올해도 가슴에 묻어둔 응어리가 풀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접었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기억하려 하는지 박근혜 정부가 귀를 기울였으면 하는 것이다.

안경호 사회부 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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