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우 전 총리는 '서강학파'의 대부로 불린다. 서강학파는 1970년대 경제발전을 이끌었던 서강대 출신 엘리트 경제관료들을 일컫는 말. 1960, 70년대 정권을 잡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중용한 서강대 출신 경제관료들이 '한강의 기적'으로 불린 고속성장을 주도하면서 서강학파라는 용어가 생겼다.
서강학파의 시초이자 대부인 남 전 총리는 1969년 10월 재무장관으로 발탁된 이후 경제부총리와 국무총리를 지내며 70년대 경제발전을 주도했다. 그는 최장수 재무장관(4년 11개월), 최장수 부총리(4년 3개월)라는 기록을 세울 정도로 박정희 정권에서 경제정책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1971년 금융통화위원이 된 이승윤 서강대 교수와 한국개발연구원(KDI) 초대 원장에 오른 김만제 서강대 교수도 70년대 거시경제 정책과 성장모델을 설계하며 남 전 총리와 함께 '서강학파 트로이카'로 활약했다.
서강학파 1세대는 전형적인 성장주의자로 재벌 우선, 수출 지상주의, 선성장 후분배 등을 주장한 게 특징이다. 이들의 제자인 김덕중 전 교육부 장관, 김종인 전 민주당 의원 등은 서강학파 2세대로 꼽힌다. 이들은 1970년부터 90년대까지 핵심 경제 브레인으로 활동했다.
서강학파 3세대부터는 서강대 경제학과 졸업생들이 계보를 잇고 있다. 김광두ㆍ김경환ㆍ남성일 서강대 교수, 이덕훈 전 우리은행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1,2세대와는 달리 산업, 부동산, 노동, 은행 등 확실한 전공 분야를 갖고 있지만, 성장 및 시장우선주의에 빠진 친(親)재벌론자라는 점에선 차이가 없다.
문민정부까지 명맥을 이어오던 서강학파는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정책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성장 일변도의 경제정책이 외환위기를 낳은 근원으로 맹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2006년 청와대가 서강학파의 불균형 성장론이 실패했다며 공개 비판하면서 사실상 몰락했다는 말까지 공공연히 나돌았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서강학파는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다. 1세대 남 전 총리는 2007년 대선 때 경제고문으로 참여한 인연으로 올해 3월 국가원로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박 대통령 바로 옆자리에 앉아 주목을 받았다. 2세대 김종인 전 의원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박근혜 대선 캠프에 합류하며 힘을 보탰다. 3세대인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박 대통령의 경제 사수'로 불리고 있으며 김인기 중앙대 명예교수, 전준수 서강대교수 등도 대선 캠프에서 일했다. 최근엔 서강학파 3세대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을 지낸 홍기택 중앙대 교수가 산은금융지주 회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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