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를 들어라, 시민들이여. 대열을 형성하라. 적들의 더러운 피가 우리 밭고랑을 적실 때까지, 나아가자, 나아가자."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의 후렴부분이다. 살벌하다. 살벌해도 프랑스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이 곡이 흘러나온다. 국가대항 축구경기에서는 선수들도 따라 부른다. 그렇다고 상대팀 선수의 '피'가 그라운드를 적실 때까지 싸우는 건, 물론 아니다.
생각이 이쪽으로 미친 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었다. 구구절절 이유를 들어 이 노래를 5ㆍ18기념식에서 배제하려 한 국가보훈처의 결정이 얻은 결과는 무엇일까. 오월항쟁을 깊이 추념할 수 있는 이들은 식장에서 등을 돌렸다. 공연을 위한 합창단은 생뚱맞게 '인천'에서 공수되었다. 남은 건 공직자들. 속 빈 강정과 다를 바 없는 '순수관변' 행사가 되었다. 대신 주변은 한층 술렁술렁해졌다. 요 며칠 '임을 위한 행진곡'은 나름 인기가요였다. 5월 18일 아침에는 나조차 심사가 뒤틀려 이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설거지를 했다.
하긴, 제도권 안에 자리 잡아 '공식적'인 것이 되면 대개 따분해지는 법이다. 삼일절 노래가 들린다고 선열들의 넋을 헤아리는 이가 몇 명이나 될까. 그러니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냥 '비공식적'인 오월의 노래로 뜨겁게 살아있는 편이 좋을지 모른다. 행사용 '공식기념곡'을 따로 만들겠다는 보훈처의 황당한 계획에도, 이런 '깊은 뜻'이 담겨 있으리라 멋대로 해석하련다.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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