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캣맘' 한모(59ㆍ서울 강동구 길동)씨는 매일 밤 11시만 되면 집을 나선다. 한씨는 사료, 물 등을 가득 실은 차로 동네 골목길을 돌며 굶주린 길고양이의 허기를 달래준다. 그는 "사람들이 돌에 맞아 눈이 빠지고 로드킬 당한 길고양이를 눈길 한번 안주고 지나치는 걸 보고 한참을 운 뒤 6년째 밥을 먹이고 있다"고 말했다.
버려지거나 안락사 직전의 고양이 6마리를 집으로 데려와 키우는 한씨는 매일 100~150여 마리의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비밀 아지트에서 14마리를 따로 돌보고 있다. 사료 값만 한 달에 100여만원. 직장도 그만두고 길고양이를 찾아 다니다 얼마 전 병원 신세를 지기도 한 그는 "저보다 더 열심히 활동하는 캣맘들도 있지만 이제는 공동체 단위의 체계적 관리가 절실하다"고 털어놨다.
한씨와 같은 캣맘들의 뜻이 모여 강동구에 '길고양이 급식소'가 생긴다. 특히 10년째 길고양이에 밥을 줘온 것으로 알려진 유명 만화가 강풀은 밥그릇 제작비용 1,000만원을 기부하고 길고양이 급식소에 관한 만화도 그리며 '캣대디'를 자처했다. 지난 2월에는 구청장을 만나 직접 설득에 나서기도 했다.
관리 필요성을 공감한 강동구청은 길고양이를 대상으로 사료 급식소 지원사업 시범운영에 나서기로 했다. 길고양이 먹이 주기에 직접 나서는 지방자치단체는 강동구가 처음이다.
구는 이에 따라 30일까지 주민센터 18곳에 길고양이 전용급식소를 설치할 계획이다. 급식소는 파손이나 이물질 혼합 등의 사고를 막기 위해 폐쇄회로(CC)TV로 보이는 곳에 놓인다. 먹이를 주고 관리하는 일은 구내 캣맘으로 구성된 동물보호단체인 미우캣보호협회 회원 50여명이 맡을 예정이다. 사료는 강풀씨가 시범운영기간 동안 지원하고 향후 미우캣보호협회 등이 후원을 받아 충당하기로 했다. 현재 강동구에는 1,500 ~ 2,000여 마리의 길고양이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앞서 구는 지난해 길고양이를 없애달란 민원이 400여건에 달한 만큼 급식소 운영에 대한 주민 반발을 의식, 6개월간 설득작업을 거쳤다. 급식소를 운영하면서 중성화 수술(Trap-Neuter-ReleaseㆍTNR)을 병행할 경우 체계적 관리가 가능해져 오히려 민원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중성화 수술을 받은 길고양이는 짝짓기 때 구애 소리를 내지 않아 빈번한 소음민원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김미자 미우캣보호협회장은 "중성화수술은 국제적으로 검증 받은 인도적 개체 수 조절 방법"이라며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공급하면서 중성화 수술을 병행하면 점차 개체수를 줄이는 것은 물론, 쓰레기봉투를 뜯어 주변을 더럽힌다거나 울음소리가 시끄럽다는 등의 민원이 사라져 결국 고양이와 주민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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