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날 세계에서는 시장의 압제가 행해지고 있다”고 비판하며 각국 지도자들에게 “돈의 문화를 끝내라”고 촉구했다. 교황 취임 후 내놓은 자유시장 경제에 대한 발언 중 가장 강도 높은 비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6일 바티칸에서 새로 임명된 세계 각국 대사들을 만나 세계 금융 위기를 언급하며 이같이 말했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교황은 “성경에 나오는 금송아지 숭배가 오늘날 새롭고 비정한 모습으로 되살아나고 있다”며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을 소비 능력으로만 평가하고 나아가 사람들을 소비재로 여기는 경제의 독재를 초래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교황은 “사람들이 인간적 목표가 결여된 돈의 문화 속에서 품위를 잃은 채 살아가려고 분투하고 있다”며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불안이 증가하고 선진국에서조차 삶의 기쁨이 사라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교황은 또 빈부격차의 심화에 대해 “시장의 무제한적 자율성과 투기적 금융을 떠받치며 국가의 통제권을 부정하는 이데올로기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교황은 “빈자들의 보물인 연대는 금융과 경제 논리에 반하는 비생산적인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는 말로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교황은 특히 각국 금융 전문가와 정치 지도자들에게 “가난한 자와 재산을 나누지 않는 것은 그들로부터 강탈하는 것이라는 성 요한 크리소스톰의 가르침을 새겨들어야 한다”고 당부하며 “모든 이들을 이롭게 할 윤리적 경제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황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시절에도 자국 정치권에 경제 위기 책임을 묻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교황 취임 후에는 “빈자를 위한 교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교황 즉위명 역시 청빈을 실천한 13세기 성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바티칸은 이날 바티칸 은행 개혁의 일환으로 사상 처음 외부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아 연차 보고서를 낼 계획을 발표했다고 BBC방송이 전했다. 에른스트 폰 프라이베르크 바티칸 은행장은 “은행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전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은행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바티칸 은행은 수년간 마피아의 돈세탁 창구로 활용됐다는 의혹을 받아 교황의 개혁 과제 중 우선 순위로 꼽혀 왔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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