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얘기가 있다. 바둑과 관련한 유명한 중국 설화다. 바둑이 그만큼 재미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한 판의 바둑이 대단히 오래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바둑도 스피드 시대다. 과거에는 제한시간이 짧으면 각자 두 시간, 조금 길면 다섯 시간씩 돼서 아침에 시작된 바둑이 밤늦게 끝나는 경우가 많았고 지금도 일본에서는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 바둑이 두어지지만 요즘 국내에서는 속기바둑이 대세다.
특히 모든 대국이 저녁 7시부터 시작되는 KB리그가 개막하면서부터 공식 시합 바둑을 하루에 두 판씩 두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KB리그가 개막한 지 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김지석, 최철한, 강동윤, 목진석, 홍성지, 안성준, 한웅규, 강병권, 조인선, 이지현, 박승화 등 무려 11명이나 낮에는 일반 기전 대국을 두고 저녁에는 KB리그에 출전하는 강행군을 했다.
하지만 하루 두 판 연속대국의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김지석, 목진석, 안성준이 두 판을 거푸 이겼을 뿐 나머지 8명은 약속이나 한 듯 나란히 1승1패를 기록했다. 다행히 두 판 다 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1승1패자 가운데 이지현 한 명만 낮에 열린 1차전에서 진 다음 저녁 대국에서 이겼을 뿐 나머지 7명은 모두 낮에는 이겼지만 저녁에 열린 KB리그 대국에서는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는 것. 아무리 속기대국이라지만 하루에 두 판이나 공식 시합 바둑을 두는 건 아무래도 체력적인 면에서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앞으로 예선 대국과 KB리그 대국이 겹칠 경우에는 가능하면 일정을 조정해서 연속대국을 피하는 게 승률 관리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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