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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우리 얼마나 함께

입력
2013.05.1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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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씨의 10년 기고 글 엮어시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과 동생까지 먼저 보낸 아픔'허방같은 인생사' 고백

노(老) 시인은 눈물이 많다. 영화나 책을 보다가, 성당에서 기도를 하다 툭 하면 울고 마는 그에게 눈물은 일종의 '영혼의 부동액'이다. 그런 시인의 성품은 교교한 달빛 아래 핀 흰 박꽃을 보며 남몰래 눈물을 훔치던, 동화작가인 아버지 마해송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마종기(74)씨가 낸 산문집 에는 그런 정갈한 시인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1966년 1월 3일 공군병원으로 전직해 군의관 생활의 마지막 몇 달을 보내고,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미국 수련의 길을 택하고 나서 이런저런 고민으로 잠 못 들던 시절을 그는 잊지 못한다. 축복처럼 내리는 함박을 위안 삼으며 눈물 흘렸던 날들이다. 50년 세월이 흘렀고, 한국전쟁 당시 주린 배를 붙잡고 피난살이 하며 꿀꿀이죽 몰래 먹던 어머니(무용가 박외선)를 훔쳐보곤 줄달음을 치던 소년은 칠순을 훌쩍 넘겼다.

그의 삶을 붙드는 화두는 '이방인'이다. 미국에서 살아온 나날에 대해 '낮에는 미국 사람으로 밤에는 한국 사람으로, 주중에는 미국 의사로 주말에는 한국 시인으로 살아온 괴상한 생활에 길들여졌다''미국에서의 내 행색은 수상하게도 그 긴 세월을 끈질기게 고국만 바라보고 그리워하는 기행적인 삶이었다'고 고백한다.

그 세월은 슬픔과 고독, 나름의 행복을 씨줄과 날줄 삼아 직조해낸 한 편의 시 같기도 하다. 미국에서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들었지만 그는 귀국할 비행기표 값이 없었고, 돈을 빌릴 친구도 없었고, 며칠간의 휴가 조차 불가능했다. 신문기자 출신으로 타의로 회사를 그만 둔 뒤 미국에 정착해 살던 동생이 총기 난동 사건으로 명을 달리한 아픔도 있었다. 멀리서 보면 그저 다복하고 순탄하기만 해 보이는 시인의 삶도 찬찬히 살펴보다 보면 그렇게 적지 않은 슬픔이 침잠해 있다.

그런 그에게 시를 쓰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는 한 방편이나 마찬가지였다. 중학생 때부터 오 헨리의 단편 소설 '마지막 잎새'를 유달리 좋아했던 그는 사경을 헤매던 존시를 위해 밤새 사다리 위에서 추위를 무릅쓰며 마지막 잎새를 그린 화가 베어먼을 보며 경탄한다. '아,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예술가라니!' 그렇게 인간의 목숨을 살리는 의사와, 영혼을 구하는 시인 사이의 끈을 찾아낸 것이다.

지난 10년간 기고한 글을 한데 모은 이 책은 그래서 그저 시인이 지나온 삶의 궤적을 담은 수필집일 뿐 아니라 생활과 예술을 함께 갈고 닦은 시론(詩論)이다. 책에서 그는 서구문학 일변도와 이념에 매몰된 시단의 흐름에 비판을 잊지 않으면서 스스로에게도 '시란 무엇이냐'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인간에게 사랑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는 시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우정과 신뢰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간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는 만남이 없다면 나는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고 또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이 죽지 않는다면 시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이 죽고 난 다음에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쓰지 못했을 것이다.'

지나온 시간을 '허방 같은 인생'이었다고 회상하는 그에게 시는 그야말로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게 하시고/눈물 속에서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죽어서는 그들의 눈물로 지나게 하소서'('기도'중 일부)라고 되뇌어온 낮은 기도가 아니었을까.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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