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물길이다. 큰 강물에 어지간히 흙탕물이 흘러 들어도 이내 맑게 흐르듯, 오류와 오점을 안고서도 역사의 큰 흐름은 흐려지지 않는다. 그 오류와 오점을 되짚어 끊임없이 역사를 새로 살피려는 노력은 앞으로 그런 오류나 오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혜를 얻자는 뜻이지, 흐릿한 얼룩에 억지로 검정 칠을 해서 돋보이게 하려는 게 아니다.
이런 상식에 찬물을 끼얹는 역사왜곡 기도가 잇따라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역사왜곡 하면 으레 떠오르는 일본 우파가 아니라 국내 좌우파가 그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다큐멘터리 이 한국현대사를 '친일파와의 전쟁의 역사'로 잇따라 비틀어 논란을 부른 마당에 몇몇 종합편성(종편) 채널이 5ㆍ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실체가 '북한에서 남파된 특수부대에 의한 게릴라전'이라는 주장을 그대로 내보냈다. 우리는 앞서 의 주장에 실소하면서도, 찻잔 속 태풍으로 여겨 외면했다. 그러나 종편의 이번 5ㆍ18 관련 방송으로 의 역사왜곡이 정반대 방향의 왜곡을 자극, 양자의 역사왜곡 경쟁이 불붙어 한국현대사를 누더기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그것이 좌든 우든, 현대사의 전체적 흐름과 동떨어진 사실(史實)을 끄집어내어 비틀거나 과장하고, 심지어 날조하려는 모습은 추하다. 일본제국주의의 출발점이 1867년의 메이지 유신이라는 엄연한 사실 앞에 어떻게 구한말 이승만 전 대통령의 투옥이 식민지 강점 이전의 일이어서 일제 탄압과 무관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또 5ㆍ18 당시 전남도청에서 계엄군과 맞섰던 사람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전남도청을 남파 게릴라가 점령했다고 떠벌리도록 두는가.
개인의 역사 인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훨씬 더 엄밀한 검증과 확인, 사회적 합의 절차까지 거친 '공인된 역사'의 뼈대를 통째로 흔들 수는 없다. 정치이념과 사회적 이해가 다르다고, 헌법과 법률이 인정한 상해 임시정부나 4ㆍ19, 5ㆍ18 등까지 훼손하려는 잔꾀는 즉각 중단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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