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이 난을 통해 소개한 윤병세 외무장관의 '잔인한 4월'의 충격이 아직껏 가시지 않는다. 올해로 65세를 맞는 대한민국 외교의 성숙한 화술, 자랑할 만한 현주소 아닌가. 정상외교에 따라나선 대변인의 스캔들로 죽 쒀 뭐 준 꼴이 됐지만, 그 외교에 거는 나의 기대는 변함이 없다. 글의 결론은, 좀 역설이지만, 화술이 이제 더 이상 외교관의 기본화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사가 카운터파트인 주재국 외교부의 차관보를 만나는 횟수는 많아야 월 1회, 그나마 10분 내외의 의례적 면담이 고작이다. 아무리 화술이 뛰어난 외교관이라도 기량 발휘를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문필외교다.
대사가 현지 유력 신문에 글을 기고하면 주재국 외교장관은 물론 그 나라 원수까지 읽는다. 크게는 그 나라 수십만의 신문독자까지 펜 하나로 아우를 수 있다. 과거처럼 영어 몇 마디 잘하는 것으로 외교하던 시대는 지났다.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웬만한 외교관이면 입으로는 수준 높은 영어를 구사하지만 글로는 그 수준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워싱턴특파원 시절 내가 취재한 바로는 사람 눈에 잘 안 띄는 대사관 별관의 한 별실에 명문 컬럼비아대 출신 미국인 문학석사가 상근, 대사나 공사가 쓴 문장을 손질해 밖으로 발송하고 있었다. 훈민정음으로 글 잘 쓰면 영어로도 잘 쓰기 마련이건만, 한국외교관들이 평소 글쓰기 훈련을 게을리 한 탓이다. 글쓰기에 서툰 외교관들…, 그 원인은 지금의 국내 중ㆍ고교로 눈을 돌리면 자명해 진다.
열 개의 고교 가운데 한 두 학교 빼면 작문교사를 둔 학교가 거의 없다. 갓 부임한 국어교사한테 교장이 작문을 맡아 줄 것을 요청하면 교사들 대부분이 난색이 된다. 그 교사 스스로가 고교시절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중ㆍ고교 가운데 백일장을 둔 학교가 몇이나 되던가? 글 솜씨 서툰 외교관은 한갓 표피현상일 뿐, 지금 우리 아들 손자들이 이런 풍토에서 자라고 있다. 고3생의 글짓기 수준은 예전 초등학교 6학년 수준, 잘 나가는 대기업 과장들도 기껏 고1수준의 작문에 머물고 있다. 누구 책임인가.
정부 책임이다. 엄밀히 말하면 대통령 책임, 그 지각(知覺) 책임이다. 역대 대통령치고 문필소양을 지닌 인물이 없었거늘 항차 국민의 글 수준까지야 어찌 감별했겠는가. 글쓰기가 성행하면 국민들이 다시 태어난다. 변소 낙서수준의 인터넷 악성댓글도, 누리꾼도 사라진다. 기자출신 대변인의 이번 스캔들도 따지고 보면 글쓰기 부재의 반영, 그 예표(豫表)다. 밥 벌려고 글은 썼으나 제대로 된 글쓰기를 거른 탓이다. 이대로 방치하면 '제2, 제3의 윤창중'만 늘 뿐이다.
미래경제와 기술이 창조되면 국민소득은 꽃과 과일처럼 풍요로워진다. 문제는 우리가 정작 봐야 할 것이 꽃과 과일이 아닌, 4계절 통틀어 온몸으로 숨 쉬는 나무라는 점이다. 이 나무의 호흡과 생명이 바로 글쓰기다. 더 쉬운 표현으로, 경제와 기술을 핵잠수함에 비유하자면 글쓰기란 를 쓴 프랑스 공상작가 쥘 베른 같은 문필가의 양산을 뜻한다. 미래창조부를 신설한 박근혜 정부에게, 또 그 미래창조의 일익으로 최근 1조5,000억원을 쾌척한 삼성 측에 내가 박수를 치는 건 그래서다. 삼성의 미래청사진에 예의 글쓰기가 빠져 안타깝지만, 우선 전국 초중등 대학의 백일장을 부활시켜 그 시상과 재정 지원만이라도 삼성이 책임져, 꽃이나 과일보다 나무의 생명을 직시해 주기를 촉구한다.
아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촉구도 된다. '미래창조'라는 이 아름다운 단어가 과거 어느 대통령이 내건 '보통시민'처럼 재임 5년의 단명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우선 백일장에 장원한 학생들의 지망대학 무시험 합격부터 보장해보라. 글쓰기란 경제나 기술창조와 달리 박수와 보상, 무엇보다 나무를 살리려는 '잔인한 극성'이 요구되기에 하는 말이다.
김승웅 전 한국일보 파리특파원 swkim43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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