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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5월, 그찬란한 슬픔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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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5월, 그찬란한 슬픔의 계절

입력
2013.05.1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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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화창한 봄날,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잔인한 잉태의 계절 4월을 거쳐, 5월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계절을 만끽하면서 비로소 봄이 완연함을 실감한다. 연두빛 새잎들이 녹색으로 변하고 온갖 꽃들이 만개하고 있다. 거리에는 사람이 넘쳐나고 모두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5월은 축제의 계절이다. 고을마다 철쭉제, 유채꽃축제 등 꽃 축제가 한창이다. 산나물축제에 이어 함평나비축제와 멸치 홍어축제, 이어서 연등축제가 지역마다 벌어진다. 과연 5월은 계절의 여왕이다.

행복할 것 같은 5월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일년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계절이다. 혹한의 겨울에 자살률이 오히려 가장 낮다. 관심을 끄는 것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5월 자살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노인의 자살률이 특히 높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깽은 1897년 에서 추운 계절이 끝나고 더운 계절이 시작할 때에 자살률이 높다고 했다. 화창한 날 행복해 보이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고 공허하게 느껴질 때에 남은 선택은 자살이다. 성균관대 전홍진 교수는 자살시도자의 52%는 우울증으로 진단되었고, 우울증에 음주가 곁들여질 때에 자살 시도율은 거의 두 배로 급증한다는 연구결과(2012년)를 발표하였다.

1890년 미국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자존감(self-esteem)의 상처가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자살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자존감이란 자신이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상실할 때에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쉽게 찾아오는 마음의 '감기'라고 한다. 누구나 잠시 우울해졌다가 즐거워졌다가 다시 평상심을 찾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일상적인 생활패턴이다. 정도가 심해지면 조울증으로 발전한다. 의학적으로 봄은 정신질환 발병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따뜻한 봄 햇살이 계절성 우울증을 일으킨다. 건강보험 통계에 의하면 여성의 우울증이 남성보다 2배 높게 발생한다. 하지만 여성의 경우 우울증이 남성보다 높지만 자살율은 남자가 높다.

남성들은 자존감에 상처를 입을 때에 자살에 이른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즐거워야 할 기념일들이 부담스러운 날이 될 수 있다. 가장의 역할, 부모의 역할,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못하게 될 때에는 가족들로부터 소외되고, 직장과 사회에서도 소외된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가족과 사회의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찾지 못할 때에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고, 심각한 상실감을 느낄 때에 자살의 유혹이 찾아온다. 남성은 40대 이후에 여성 자살자의 2∼3배에 이른다. 그만큼 대한민국 남성들의 운명은 가혹해 보인다. 가장의 역할과 사회에서의 위치에 대한 중압감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이러한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5월이 오면 국가적 차원에서 '자살경보'라도 울려야 할 판이다. 개개인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우울감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 현실의 빠른 변화속도에 전통적인 가족과 사회적 관습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 속에서 개인의 부적응이 발생한다. 5월의 각종 행사들에서 상처받고 소외되는 사회적 낙오자들이 있다. 이들의 상대적인 상실감이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5월의 각종 기념일 축제들을 묶어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국민대통합의 축제를 만들면 어떨까. 축제를 준비하고 참여하면서 5월의 우울함을 이겨낼 수 있다. 태양빛이 밝아질수록 그늘은 어두워지고 깊어진다. 소외된 계층, 말없는 소수들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5월의 화창함 뒤에 가려진 우울함과 무기력을 우리 사회가 따듯하게 보듬어야 한다.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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