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고어(古語)의 하나인 팔리(Pali) 문자는 한글의 여러 기원 중의 하나로도 꼽힌다. 이 문자로 기록된 미얀마의 12세기 고비문(古碑文)에는'무란마'라는 민족 이름이 등장한다.'빠르고 강력한 민족'이란 뜻의 이 말은 미얀마, 비르마, 버마 등으로 표기되다 문서에는 미얀마, 구어체에서는 버마를 쓰는 경향이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영국이 19세기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버마란 이름을 택했고 1948년 독립과 함께 국호로 굳어졌다.
■ 1988년 8월8일 이른바'8888 쿠데타'로 집권한 버마 신군부는 이듬해 국호를 미얀마(Union of Myanma)로 바꿨다. 영국 식민잔재 청산과 인구 72%를 차지하는 버마 족 외에 130여 개에 달하는 소수 인종의 반발을 없앤다는 명분이었다. 유엔과 중국 등 대부분의 나라는 미얀마를 정식 국호로 인정했다. 그러나 해외망명 반정부 인사들은 군사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저항하기 위해 미얀마 국호를 거부하고 버마를 고수해왔다.
■ 미국과 영국 정부, 몇몇 서구 언론들도 그에 따랐다. 버마 국호 사용은 군사정권 거부 저항운동이자 국제사회의 압박 수단이기도 했다. 그런데 미 백악관이 엊그제 테인 세인 대통령의 20일 방미 일정을 발표하면서 국호를 '버마' 대신'미얀마'로 표기했다. 지난해 11월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도 미얀마란 국호를 사용했지만 일시적이었다. 미얀마 최고지도자의 방미는 1966년 이후 47년 만이다.
■ 오바마 대통령이 미얀마 방문에 이어 테인 세인 대통령을 초청하고 미얀마 국호도 수용함으로써 최근 개혁과 민주화를 가속화하고 있는 테인 세인 정권에 확실한 당근을 준 셈이다. 군사정권 제재에 앞장서 왔던 미국과 유럽연합은 제재해제 등 잇따라 유화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미얀마의 개혁ㆍ개방을 시동한 것은 미국과 유럽연합의 제재ㆍ압박이 아니라 아세안(ASEAN)의 건설적 포용정책이었다. 북한에 미얀마 모델을 따르라고 촉구 중인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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