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가 산업재해로 일을 못하게 되면 (유)가족을 대신 채용할 수 있게 한 현대자동차의 노사 단체협약은 무효라는 울산지법 판결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돼 왔던 대기업 노조의 '일자리 세습'에 대한 첫 판결이다. 현대차는 이밖에 '장기근속자의 자녀가 신규채용에 응시해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하면 2차 면접에서 가산점을 부여한다'는 조항도 있다. 기아차 노조 역시 최근 장기근속자 자녀에 대한 채용 가산점을 확대하려 해 공분을 샀다. 특히 현대ㆍ기아차는 사내하청 소속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는 열악하게 하면서 정규직에게만 특혜를 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채용 특혜 관련 단협 조항은 항운노조, 석유화학업계 등과 일부 공기업에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판결로 기득권 세력이 된 노조의 무리한 단협 요구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을 노조가 단협에서 무리하게 요구하는 사안 전반에 대해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특히 대기업 강성노조에 이런 내용이 많은 만큼 노조의 사회적인 책임에 대해서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기근속자 자녀에 대한 가산점제와 달리 산재 피해자 가족에 대한 특혜에 대해서는 필요한 제도라고 보는 시각도 있어 분리해서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이 국가유공자 유가족에 대해 채용 가산점 등 특혜를 주듯 산재 사망자는 회사 입장에서는 유공자"라며 "가족의 산재로 충격을 받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다른 가족은 다른 사람들보다 경쟁의 조건이 불리할 수 있으므로 특별 채용해 배려하는 것이 사회 통념에 벗어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 노조 권오일 대외협력실장도 "어느 기업이든 노동자가 업무 중 사망하면 회사가 가족을 보호해주는 게 맞다"며 "특히 이 조항의 경우 전국 4만5,000여명 조합원 중 1년에 1,2명의 (유)가족이 혜택을 보는 정도여서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보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장기근속자 가산점제도이다. 박 교수는 "이와 달리 일자리가 부족해 채용의 공정성과 형평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가산점은 부적절한 제도"라고 비판했다.
이달 말 임ㆍ단협을 시작하는 현대차는 이 조항을 별도로 논의하지 않을 전망이다. 고용부가 위법한 내용에 대해 시정을 명령할 수는 있지만 고용부 관계자는 "확정 판결 후 시정 명령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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