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에서도 남편이 강제로 아내와 성관계를 했다면 강간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부부 강간을 인정한 대법원 첫 판결로, 이로써 부부 간에는 강간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1970년 판결 이후 43년 동안 유지돼 오던 판례가 변경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16일 부인을 흉기로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혐의(특수강간 등)로 기소된 A(45)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11 대 2 다수의견으로 징역 3년6월에 정보공개 7년, 전자발찌 부착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형법은 부녀를 강간한 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부녀(婦女)는 성년과 미성년, 기혼과 미혼 등을 불문한 여자를 통칭하는 것으로 법률상 처(妻)를 강간죄의 객체에 포함된다고 보는데 아무런 제한이 없다"며 "(이는)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으로서 여성이 가지는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사회 일반의 보편적 인식과 법 감정을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부부 사이에 민법상 동거 의무가 인정되고 여기에는 배우자와 성생활을 함께 할 의무가 포함되지만, 폭행 협박에 의해 강요된 성관계를 감내할 의무는 없다"며 "혼인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포기를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에 폭행이나 협박을 가해 아내를 간음한 경우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13명의 대법관 중 이상훈ㆍ김용덕 대법관은 "강간죄의 객체에서 법률상 처는 제외돼야 한다"며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 대법관은 "부부간에 강제적인 성관계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찬성하지만, 강간죄는 부인이 아닌 부녀에 대해 강제적인 성관계를 맺은 죄로 해석해야 하고 폭력이나 협박을 처벌하는 것으로도 (처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할 수 있다"고 밝혔다.
A씨는 2001년 10년 전 결혼한 부인 B씨와 다투다 부엌칼로 위협한 후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기소돼 1ㆍ2심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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