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이 시로(石井四郞). 태평양전쟁 당시 인간 생체실험으로 유명한 ‘731부대’책임자다. 교토제국대 의과를 졸업한 의사로, 일본 제국육군 중장에까지 올랐다. 초임장교 시절 세균학과 면역학 등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세균전 무기의 필요성을 역설, 마침내 1932년 8월 만주 하얼빈 인근에 ‘731부대’를 창설했다. 이곳에서 그는 종전(終戰)까지 무려 1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 조선인, 몽골인과 일부 유럽인들을 역사상 유례없는 참혹한 방식으로 살해했다.
■보통 인류 최악의 범죄로 같은 시기 독일 나치의 인종(유태인)절멸 시도와 생체실험을 꼽지만, 그 잔혹성과 규모에서 731부대의 만행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질병, 부상, 무기 등에 의한 신체의 반응을 알아보겠다고 인체를 해부하고 절단하면서 피험자의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관찰하고 기록했다. 부패나 마취가 실제상황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다를 수 있다는 이유로 살아있는 상태 그대로, 마취제 없이 모든 실험을 진행한 것도 똑같았다.
■기막힌 것은 이들 ‘악마’ 대부분이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치의 가장 악질적인 생체실험자였던 ‘죽음의 천사’ 요제프 멩겔레는 남미로 은신해 반성 없이 천수를 누리다 죽었다. 이시이도 도쿄 전범재판에서 기소를 면제받고 풀려나 군인연금까지 받아가며 편히 살다가 67세에 후두암으로 사망했다. 그나마 나치 쪽 관련자들은 죄책감으로 자살한 경우가 여럿이나, 이시이 부하들은 하나같이 화학ㆍ제약회사나 학계에서 대접받으며 활동했다.
■전승국인 미국이 ‘귀한’ 생체실험 자료들을 탐내 이들에게 면죄부를 준 때문이다. “관련 자료들은 미 국가안보에 대단히 중요하므로 기밀유지를 위해 전범행위의 증거로 활용해선 안 된다.” 도쿄재판의 진술기록이다. 아베 일본 총리 등이 망언과 망동을 일삼는 것도 역사상 죄악에 대해 제대로 된 응징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베의 외조부인 A급 전범용의자 기시 노부스케도 기소되지 않고 석방돼 총리에까지 올랐다.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는 역사는 반드시 후환을 남기는 법이다.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