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의혹 사건의 피해자인 인턴사원과 그를 도와준 워싱턴 한국문화원 직원이 8일(현지시간) 오전 경찰이 아닌 긴급구조전화 911에 신고했으며 이에 911 측이 두 사람이 있던 호텔로 정복경찰을 출동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911 측은 "8일 오전 8시 12분 전화가 걸려왔다"면서 "그러나 통화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14일 밝혔다. 미국에서 911은 교통 사고, 범죄, 화재 등 응급 상황에서 구조를 긴급 요청할 때 사용하는 전화번호다. 따라서 두 사람이 911에 신고한 배경을 비롯해 당시 현장에서 전개된 상황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두 사람이 911에 구조를 요청한 것은 경찰 신고 방법을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당시 경찰에 신고하는 것보다 더 다급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는 "두 사람이 호텔에서 방 문을 걸어 잠근 채 상사들에게 저항했다"는 일부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한국문화원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호텔 방 앞에는 문화원과 청와대의 관계자가 울고 있는 인턴사원을 설득하기 위해 서 있었다. 설득 과정에서 회유 혹은 협박으로 비칠 부적절한 말들이 오가자 방 안에 있던 두 사람이 위기감을 느껴 911에 신고한 것으로 보인다. 방 안에서 인턴사원과 함께 있던 문화원 직원은 당시 "일을 그만 두겠다"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소리친 것으로 알려졌다.
911 전화를 받고 출동한 정복경찰은 두 사람을 접촉한 뒤 성추행 용의자가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계통을 통해 국무부에 관련 사실을 알렸으며 국무부는 다시 주미 한국대사관에 이 사실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당시 경제인 조찬간담회에 참석해있던 윤 전 대변인의 신병 확보에 나서지 않은 것은 이 사건을 경범죄 성추행으로 판단해 체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수사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성추행은 대개 주장은 있지만 물증은 없으며 당시 피해자가 위급상황에 놓여있지 않아 경찰이 그같이 판단했을 수 있다"면서 "긴급출동 정복경찰은 체포권한은 있지만 수사권한이 없어 성추행 사건을 직접 다루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윤 전 대변인이 다른 호텔에 숨어 있다가 택시를 이용, 공항으로 줄행랑 칠 이유가 처음부터 없었던 셈이다.
911 전화를 받고 출동한 정복경찰은 이후 낮 12시30분에 현장조사를 토대로 내부보고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건이 경찰 조사보고서에 이 시간에 정식 고소된 것으로 나와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인턴사원은 7일 밤과 8일 새벽 두 차례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경찰 조사에는 7일 밤 성추행만 언급돼 있다. 경찰이 피해자 1차 조사를 토대로 볼 때 법률적으로는 처음 성추행만 사법처리 대상이라고 판단한 정황으로 보인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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