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목숨을 끊은 젊은 여성들은 자살 직전 정신과를 찾기보다는 소화기 계통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살 직전의 스트레스가 "소화가 잘 된다. 속이 아프다"는 식의 증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처럼 내과 등을 찾는 이들이 정신과를 찾는 이들보다 더 많아 의료진의 자살 예방활동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창수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연구팀은 2004년 우리나라에서 자살한 남녀 1만1,523명이 죽기 전 1년 동안 이용한 병원, 이용 빈도, 질환 등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연구팀이 올해 초 발표한 '자살 전 성별ㆍ연령별 의료이용 차이'에 따르면 자살자의 83.8%는 자살 전 의료기관을 찾았다. 자살자 중에는 남성(7,903명)이 여성(3,620명)보다 2배 이상 많았으나 남성은 80.6%가, 여성은 90.6%가 병원을 찾았다.
자살 우려가 있는 이들은 가장 먼저 정신과를 찾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실제 정신과를 찾은 비율은 25%에 불과했다. 특히 남성은 20.8%만 정신과 치료를 받아 호흡기질환(36.8%), 소화기질환(30.9%), 근골격계 질환(29%) 등과 비교해 가장 낮았다. 김창수 교수는 "상담이 필요한데도 남성들이'낙인 효과' 때문에 정신과를 꺼리는 것을 보여준다"고 우려했다.
자살 전 3개월만 놓고 보면 남성들은 전 연령층을 통틀어 외상환자가 가장 많았다. 이중 상당수가 자살 시도였을 것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추론이다. 한번 자살을 시도한 경우 3개월 내에 자살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여겨진다.
여성도 정신질환 치료(34.2%)보다 호흡기질환(48%)이나 근골격계 질환(43.4%) 치료가 많았지만 특히 40세 미만의 젊은 여성들은 자살 직전 소화기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일이 증가했다. 10~19세 여성의 경우 자살 1년~9개월 전 소화기질환 치료를 받은 환자는 7명이었으나 이후 3개월마다 8명, 16명, 18명으로 증가했다. 정신과 내원자는 자살 6~3개월 전(43명)에 가장 많았으나 자살 직전(35명)에는 감소했다. 20~39세 여성도 소화기 내원자가 자살 1년 전부터 매 3개월마다 152명, 182명, 210명, 220명으로 증가했다. 김 교수는 "자극성 장 증후군이나 기타 기능성 장 질환이 많았다"고 밝혔다. 자극성 장증후군이란 바이러스나 세균이 아니라 스트레스에 의해 설사, 구토, 구역질 등을 하는 증상으로 검사를 해도 특별한 원인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유진 가천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과 상담자들의 경우 속이 아프거나, 팔다리가 쑤시거나,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이 막히는 등 신체적 이상을 호소하며 해당 진료를 받지만 많은 경우 원인이 드러나지 않아 2차적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우울증으로 판단되곤 한다"며 "비정신과 의사, 일반의들에게 자살예방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적절한 정신과 상담을 받도록 유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말까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자살자(7만1,916명)들의 자살 전 의료행태를 김 교수의 분석과 유사한 방법으로 분석할 계획이다. 이중규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자살자의 의료 경로를 파악해 자살의 원인을 파악하는 정부 차원의 첫 작업"이라며 "자살 예방 정책 수립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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