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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서구 제약사들, 동독 정부·병원에 돈 주고 환자 5만여명에 비밀 임상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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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서구 제약사들, 동독 정부·병원에 돈 주고 환자 5만여명에 비밀 임상시험"

입력
2013.05.1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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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사는 니콜 프라이스(36)는 27년 전 죽은 어머니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는 베를린 장벽이 존재하던 당시 동독 에르푸르트에 살았다. 어머니는 피부암을 앓고 있었고 양성 진단을 받았지만 갑자기 병세가 악화해 사망했다. 프라이스는 "어머니의 상태가 나빠지기 직전 아버지가 병원에서 '베를린 약국 약'을 투여했냐고 물었다"며 "이는 의사들이 어머니를 상대로 서구에서 개발한 신약을 임상시험 했느냐는 뜻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어머니가 받은 치료와 관련한 정보 공개를 요청했지만 병원 측은 묵묵부답이다.

서구 제약회사 임상시험의 희생양이 된 동독인이 프라이스의 어머니만이 아니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최근 의사들의 개인 아카이브에서 입수한 동독 보건부와 국가안보부의 비밀 서류를 바탕으로 "1970~1980년대 서구 제약산업이 동독 환자 최소 5만명을 600여개 약제의 임상시험 대상으로 삼았다"고 14일 보도했다. 독일의 바이엘, 쉐링, 훼이스트, 베링거와 미국 화이자, 스위스의 산도스, 로슈 등 주요 제약 회사들이 동독 전역 50개 이상 병원에서 임상시험을 했으며 동독 정부는 제약 회사로부터 돈을 받고 이를 용인했다고 슈피겔은 전했다.

슈피겔은 "임상시험 대상자 대부분은 시험 사실을 몰랐으며 이로 인해 상당수가 사망했다"고 지적했다. 1988년 훼이스트(현재는 프랑스 제약회사 사노피 그룹에 합병)가 한 병원에서 고혈압 환자들을 대상으로 혈류순환개선제인 트렌탈을 위약 대조 시험했을 때 두 명이 죽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베링거는 생후 4~25일된 조산아들에게 적혈구 생성 촉진 인자인 에리스로포이에틴을 주입했으며 바이엘은 망상증이 있을 정도로 심각한 알코올 중독 환자들을 대상으로 혈관 확장제인 니모디핀 효과를 시험했다.

슈피겔에 따르면 동독 보건부는 1983년 동베를린 근교 아파트에 '의약품과 의료 장비 자문 사무소'를 만들고 이곳을 서구 제약회사와 접선 거점으로 삼아 임상시험 유치를 조직화했다. 서구 제약회사 대표와 로비스트들이 이곳을 드나들며 임상시험 한 건당 80만 독일마르크를 제공하고 참여 병원에 컴퓨터 등 설비를 기부하는 등의 조건으로 협상을 했다. 한 자선병원은 1985년 쉐링의 임상시험을 유치하는 대가로 600만 독일마르크를 받았는데 이는 쉐링이 당해 책정한 총 임상시험 예산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슈피겔은 "제약회사와 병원이 정보 공개를 거부하고 오래된 자료를 폐기하고 있어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독일 하원은 14일 "이런 임상시험으로 서독 기업들 또한 이득을 얻었다는 점에서 독일 사회와 학계가 좀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며 정부 조사를 촉구하는 발의안을 채택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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