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제조업체 배상면주가의 대리점주가 본사의 '물량 밀어내기(제품 강매)'를 못 견디겠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실이 알려진 15일 주류도매업계에서는 본사의 제품 강매, 막무가내 제품 공급 등 기형적 유통구조가 비극을 불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배상면주가 인천 부평·서구지역 대리점주 이모(44)씨는 지난 14일 부평구 대리점 창고에서 '본사의 제품 강매와 빚 독촉을 더 못 견디겠다' '남양유업은 빙산의 일각' '살아남기 위해 행사를 많이 했지만 남는 건 여전한 밀어내기'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2003년부터 대리점을 운영한 이씨는 생막걸리가 출시된 2010년 극심한 본사의 밀어내기 압박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당시 막걸리 유통을 위해 냉동탑차 3대를 6,000만원에 구입했지만, 본사측이 판매 부진을 이유로 출시 8개월 만에 막걸리 생산을 중단하면서 큰 적자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 빈소를 찾은 친척 송모(41)씨는 "가끔 집에 놀러 가면 베란다에 쌓아놓은 막걸리가 10상자씩 꼭 있었다"고 말했다. 본사의 판매 목표량에 턱없이 부족한 판매실적으로 반품도 되지 않아 유통기한(10일)이 지난 막걸리는 창고와 집안에 쌓아놓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다른 대리점주들도 당시의 밀어내기 실태를 증언하고 있다. 수도권지역의 한 점주는 "당시 본사에서 일일 출고량에 따라 지역별로 막걸리 80~100짝(1짝 당 20병)씩 떠 안기고 냉동탑차 구입도 강요했다"고 증언했다. 이 점주는 "막걸리를 팔아본 경험이 없고 다른 술과 달리 유통기한도 열흘 밖에 안 돼 점주들이 많게는 1억~5,000만원씩 손해를 봤다"며 "하지만 본사는 제품 생산만 중단했을 뿐 책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리점주는 "본사가 '다른 대리점은 제품을 다 받았다. 입금하고 제품을 받아라. 회사도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이라며 "지금도 창고에 과일소주 신제품인 '아락'이 박스 채 쌓여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본사의 밀어내기 외에도 막무가내 제품 공급, 빚 독촉, 지속적인 매출 하락 등에 심리적 압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씨의 부인 신모(45)씨는 "남편이 최근 본사에서 '채무를 갚으라'는 내용증명서가 올 테니 놀라지 말라는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본사에 1억2,000여만원의 빚을 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여동생도 "본사가 정한 월 목표액을 못 채우면 차액을 점주가 메우고, 그렇지 못하면 판촉물을 안 주는 식으로 불이익을 받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배상면주가 측은 "2008년부터 돈이 입금되는 만큼만 물량을 주는 선 입금 후 출고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밀어내기를 할 수 없는 구조"라며 "당시 막걸리 신제품을 팔면서 1, 2주 가량 돈을 받지 않고 물량을 넘긴 적이 있지만 대규모 밀어내기와 다르다"고 해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이씨가 월 7,000만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3, 4년 전부터 전통주 시장 침체로 월 1,200만원으로 급격히 줄며 채권에 대한 부담이 커진 것 같다"며 "회사 측에서는 월 20만~30만원씩 갚으라고 했을 뿐 독촉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인천 삼산경찰서는 이씨가 자살하기 전 유서를 휴대전화로 찍어 보낸 인천∙경기지역 대리점주 3명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주류 공급과정의 위법 여부를 조사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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