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休). 나무 아래 사람이 앉아 한가로이 지내는 형상을 본뜬 이 한자만큼 현대인이 갈구하지만 정작 얻기 어려운 것도 없다. 쉼을 죄악시하고 일분일초의 시간마저 쓸모 있게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휴식은 돈과 의무감으로 무장해야 겨우 체험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되어가고 있다.
태국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푸켓에서 차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해변 관광지 카오락(Khao Lak)은 그런 현대인들이 온갖 유의미한 행위를 내려놓고 오로지 무위자적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 중 하나다. 최대한 많이, 빨리, 싸게 돌아보는 패키지 여행과 배낭여행에 익숙하다면 "지루하다"는 푸념이 나올 법도 하지만 삶에 지친 이들에게 이곳은 스스로를 돌이켜볼 여유를 선사한다. 하여 일찌감치 증발된 삶의 윤기를 되찾고자 한다면, 이것저것 다 잊고 그저 자연의 일부로 흐르는 시간 속에 몸을 맡기고 싶다면 카오락은 과감히 도전해도 무방한 여행지다.
카오락의 고요와 한적함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세 덕에 가능했다. 태국 관광청에 따르면 매년 푸켓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254만명 가운데 한국인은 29만명으로 한 달에 2만명 꼴이다. 반면 같은 팡아(Pang Nga) 주에 속하면서 푸켓에서 불과 한 시간 거리인 카오락을 찾는 사람은 수 백 명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한 휴식은 바닷가 앞 선탠용 의자에 앉아 책 한 권을 읽거나 달콤한 낮잠에 빠지는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다. 햇볕에 목마른 유럽인, 그 중에도 특히 독일인이 카오락을 유달리 사랑한다.
카오락의 제1경은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진 카오락 비치부터 방삭 비치까지 20㎞에 달하는 해변이다. 해안을 따라 백여 개 리조트가 들어선 이곳에 서면 작열하는 태양과 한 점의 구름도 허용하지 않을 태세인 쪽빛 하늘, 그리고 그 하늘과 동색으로 빛나는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어스름이 깔리면서 멀리서부터 태양이 지면 그제서야 바다가 붉게 물드는 이곳에서는 수영이나 산책하는 이조차 드물 정도로 고요가 일상화했다.
태국어로 산을 뜻하는 '카오'라는 이름에 걸맞게 카오락의 제2경은 울울창창한 열대림이다. 해변의 휴식이 지겨워지거나 우기가 시작되어 인근 섬 관광이 어려울 때는 이곳 열대림에서 코끼리 트래킹과 고무보트를 이용한 래프팅을 즐길 수 있다.
자연 한복판에 세워진 특급 리조트에서 느긋하게 쉬는 것도 카오락 여행을 즐기는 방법중 하나다. 리조트에 달린 호텔급 식당에서 세 끼 식사를 다 해결할 수 있고, 아이들은 10분만 지나면 더 이상 부모를 찾지 않게 된다는 보육시설에 맡길 수 있다. 객실 중에는 베란다 문만 열고 나가면 곧바로 수영장으로 이어지거나 아예 객실 안에 미니 수영장을 갖춘 풀 빌라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카오락은 해운대나 경포대 같은 해안가의 들뜬 유흥 분위기를 상상하는 이들의 기대를 여지없이 배반한다. 시내는 태국 여느 관광지처럼 유럽인들이 선호하는 의류 및 가전제품, 명품 카피 제품과 전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관광 기념품점, 카페와 음식점이 즐비하지만 밤과 술이 인간에게 허락하는 광기는 찾기 어렵다. 여행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삶의 독소는 쏙 빼고 무공해 장점만 모아 놓은 곳, 떠나온 카오락이 벌써 그리워지는 건 그래서다.
여행수첩●카오락에는 백 여개 숙소가 밀집해 있다. 이중 JW메리어트와 르 메르디앙 비치&스파가 이 지역을 대표하는 5성급 리조트다. 두 곳 모두 다양한 마사지 서비스는 물론이고 태국 전통음식을 비롯해 일식ㆍ이탈리아식 등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2005년 쓰나미 이후 다시 건설된 JW메리어트 리조트는 인테리어와 객실이 자랑거리. 방에서 길이가 왕복 3.5㎞에 달하는 수영장에 바로 들어갈 수 있는 풀 액세스 룸이 전체 객실의 약 3분의 1인 110개에 달한다.
●JW메리어트가 모던한 느낌이라면 드넓은 원시림 한복판에 자리한 르 메르디앙 비치&스파는 자연 친화적이다.
●카오락 여행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해파리다. 카오락 방삭 해변에는 5~8월에 해파리가 기승을 부린다. 리조트들이 해파리 출몰 시간을 알리는 안내판을 부착하므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두 리조트 모두 간호 인력과 한국인 직원이 상주하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푸켓국제공항까지 6시간 30분이 걸리고 다시 푸켓에서 카오락까지는 차량으로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여행상품으로는 하나투어에서 '카오락 5일 골드팩'을 판매한다. 6월 출발의 경우 저가항공사인 비즈니스에어를 이용하면 르메르디앙 리조트는 99만 9,000원부터, JW 메리어트 리조트는 104만 9,000원부터다. 어린이는 성인 요금의 50%이며, 리조트 내 스파도 한 차례에 한해 60%이상 할인해준다. 모든 일정에 자유시간과 리조트 식사가 포함돼 있다. 문의 태국정부관광청 서울사무소(779-5416~8) 또는 하나투어(1577-1233).
카오락(태국)=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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