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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윤창중 사건, 이쯤에서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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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윤창중 사건, 이쯤에서 돌아보기

입력
2013.05.1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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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조건'이란 게 있다. 사안의 중요성, 저명성, 시의성, 이례성, 흥미성 등이다. 사회적 의미와 파장이 크고, 알려진 인물이면 일단 뉴스가 된다. 방금 발생해 따끈따끈할수록 좋고, 특이한 일이면 뉴스가치는 더 높아진다. 여기에 성(性)같은 흥미 있는 소재라면 금상첨화다. 사실 이 중 한 둘만 갖춰도 뉴스가 된다. 언론학 교과서 처음에 나오는 얘기다.

윤창중 사건은 이 점에서 뉴스가 될만한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드문 사건이다. 당연히 모두가 흥분할만한 일이었다. 언론의 집요한 추적과 취재로 윤씨의 주장 대부분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윤씨가 '일'을 저지르기에 충분한 시공간적 조건들이 확인됐고, 윤씨의 귀국과정과 사후조치와 대응에서 서툴고 미숙한 정황이 여럿 노출됐다.

도저히 국가의 최고지도부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의 저급한 인적ㆍ조직적 밑천을 드러내고, 그 중심에 박근혜 대통령의 일인 인사와 권위적 조직운영이 있음을 환기시킨 것은 언론의 마땅한 책무였다. 성에 안차는 이들도 있겠지만 어쨌든 대통령의 사과와 분명한 사후조치 약속까지 받아냈다. 이만하면 대충 합당한 결말이다. 남은 건 사법절차뿐이다.

그러니 다들, 특히 우리 언론부터 이젠 흥분을 좀 누그러뜨릴 때가 됐다. 아무리 딱 떨어지는 뉴스의 조건을 갖췄어도, 이 정도 사안에 일주일 넘게 똑같은 톤을 유지하는 건 지나치다. 양(量)뿐 아니다. 현지언론 인용기사들이 연일 비중 있게 취급되지만 사실은 인터넷 판에만 오른 기사거나 본지구석에서 찾아낸, 그것도 특파원이 서울발(發)로 띄운 기사가 대부분이다. 현지언론에선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있는데도 '국제적 큰 망신'은 정작 우리가 만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흥분은 자칫 무리를 수반한다. 예를 들면 '미 경찰이 강간미수죄의 중범죄로 다룰 수도 있다'는 식의 기사다. 워싱턴DC 형법엔 강간미수죄도 없다. 정도에 따라 1~4등급의 성적 학대, 아니면 경범죄다. 현지경찰은 아직 경범죄로 다루고 있고, 법정에서 사인(私人) 간 유무죄를 다툴 사안으로 보고 있는 게 정확한 상황이다. 이 역시 우리가 앞장서서 중범죄로 몰아갈 것은 아니다.

정말 개탄스러운 일은 따로 있다. 방송기자들이 윤씨 집 앞에 진치고 있다가 귀가하는 아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밀고, 아파트 철문에 마이크를 대고 들리는 안의 소리에 "부인 울음소리인 듯 하다"라고 전하고, 망원렌즈를 집안에까지 들이대는 따위의 행태에선 욕지기가 나올 지경이다. 윤씨 사건으로 인해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이는 그 가족일 것이다. 이건 알 권리와도 무관한, 애꿎은 가족에게 가하는 잔인한 집단린치에 가깝다.

막 나가는 데는 청와대도 다를 게 없다. 처음엔 허겁지겁 윤씨를 빼돌려 도피시키더니, 여론이 들끓자 이번엔 미 국무부와 DC 경찰에 신속수사를 요청하며 빨리 데려가라는 식이다. 걸핏하면 권력이 수사에 개입해온 한국문화에 익숙한 탓이겠지만, 미국에선 외부 누구도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황당한 짓이다. 더욱이 마약, 살인 등 아무리 중범죄를 저질렀어도 일단은 자국민 보호원칙으로 접근하는 것이 모든 국가의 기본책무일진대, 이건 그조차 저버린 것이다.

오해는 말기 바란다. 윤씨가 한 짓이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는 추악한 범죄적 행위라는 데는 추호의 이의도 없다. 대통령의 인사와 조직운영에 대한 문제제기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무리 화가 나도 분별을 잃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언론이든, 정부든, 국민이든 무슨 일이 생기면 너무 쉽게 흥분해 궤도를 벗어나고, 또 그걸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분명히 말하건대 원칙과 정의를 벗어나 세울 수 있는 또 다른 정의란 없다.

무엇보다 한낱 일탈적 인물 하나가 저지른 일에 온 나라가 정신을 뺏기는 시간이 너무 길고 아깝다. 아무리 봐도 일본총리 아베의 '731도발'이나 개성공단, 남양유업 같은 문제들이 더 커 보이는데.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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