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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 퇴근길의 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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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 퇴근길의 몽상

입력
2013.05.1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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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퇴근하고 술자리에서 만난 후배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는 맥주 몇 잔을 걸친 뒤였다. "선배는 작가로서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면 직장을 그만두겠죠?" 나는 그 물음에 그렇지 않고,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의 배경에는 최소한의 경제적인 기반이 있어야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소박한 신념이 깔려 있다. 매문(賣文)의 유혹을 이기려면 작가도 문학적 생산행위 이외의 것에서 고정적인 수입원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그렇지 않다면, '글을 쓰는 행위'는 고단하고 비루한 노동행위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소설가는 미학적 자긍심이나 자존심을 갖고 있다는 면에서 다른 분야의 저술가와는 좀 다르다. 쓰고 싶은 글만을 쓰기 위해 고정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이 유혹적인 역설. 후배는 내 대답을 듣고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는데, 그는 그 순간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런데 말야, 나라고 왜 이런 몽상이 없겠는가.

"이제 그만 둘 겁니다. 모두모두. 오전 열 시의 빈 버스를 타고 시내를 몇 바퀴 돌고 싶거든요. 오전 열한 시의 한강도 보고 싶고요. 오전수업이 한창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을 구경하고 싶어요. 잠에서 깼을 때, 옷을 갈아입고 싶지도 않아요. 홀로 조조 영화를 보고 싶기도 해요. 그리고, 작가들을, 대우하고 대접해야 하는 선생이 아니라 동료와 선배로서 만나고 싶어요."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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