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앓았던 뇌성마비로 뇌병변장애를 안고 살아온 신수진(33) 경남 창원천광학교 교사는 학창 시절 갖은 차별과 따돌림을 당하다 고교 진학을 포기했었다. 그러다 공부를 계속해 벌써 11년째 특수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것은, 고3 담임이었던 곽상순(52ㆍ창원경일여고) 선생님 덕분이다. 스승의 날을 앞둔 12일 신 교사는 아침 일찍 곽 교사를 만나러 나섰고, 일찌감치 마을 초입까지 마중 나온 곽 교사는 반갑게 제자의 손을 맞잡았다.
신 교사는 인지능력은 일반인과 비슷하지만 언어 전달과 섬세한 신체 활동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신 교사에게 학교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초ㆍ중학교 동안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어린 친구들의 놀림이야 그렇다 쳐도 선생님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몇 배나 쓰리고 아팠다. "운동회 전날 연습을 끝내고 집에 가는데 선생님께서 부르더니 '네가 오면 우리팀이 질 게 뻔하니 내일 나오지 마라'고 하시더군요." 한창 예민했던 중3 시절 담임선생님과 심한 불화를 겪은 그는 고교 진학을 포기했다. 그러다가 "졸업장만 따자"는 생각에 1년 늦게 학교에 들어갔다.
하지만 고3 담임이었던 곽 교사와의 만남은 교사에 대한 불신을 털어내게 했고, 신 교사의 인생도 바꿔놓았다. "매일 점심시간마다 선생님을 찾아가 상담을 했어요. 당시 너무나 '힐링'이 필요한 상태였죠. 선생님은 단 한번도 거절한 적 없이 반갑게 맞아 주셨죠." 친구들에게 서운한 점, 오래 전 가슴에 맺힌 일 등 사소한 이야기부터 깊은 상처까지 신 교사는 곽 교사에게 털어놓았다. 곽 교사는 "몸이 조금 불편한 제자를 다른 학생과 똑같이 대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바로 그것이 상처 많은 장애학생에게 가장 큰 위로이자 힘이었다. 처음엔 제자의 말을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흥분한 마음을 안정시키면 언어소통도 잘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곽 교사는 한결같이 신 교사의 말을 들어주었다.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마음 다스리는 법을 배우게 된 신 교사는 자신도 곽 교사와 같은 선생님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학업에 매진했다. 신 교사는 "그 때 곽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고 말했다. 졸업 후에도 이 같은 관계는 이어졌다. 수학교사를 생각하던 신 교사에게 특수교사를 조언한 것도 곽 교사다.
신 교사는 15년간 멘토가 되어준 곽 교사를 매년 찾아뵙지만 올해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스승과의 인연을 대한적십자사가 주관한 스승의 날 기념 사연 공모에 응모해 적십자총재상을 수상했다는 작은 선물 덕분이다.
"스승이 한 학생을 살릴 수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제가 직접 겪었잖아요. 이제 저도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작으나마 힘이 되는 교사가 되겠습니다"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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