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의 4년제 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김모(27)씨는 같은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이다. 각종 자격증을 3개나 취득했음에도 계속 취업에 실패한 김씨는 최근 서울시가 추진하는 뉴딜일자리 사업인 '신택리지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서울 각 지역의 건축물, 인물, 의례, 놀이 등을 집중 조사ㆍ기록하는 '신택리지 사업'의 업무는 역사학 전공인 김씨에게 꼭 맞는 일이었다. 그러나 모집 공고 내용을 살펴보던 김씨는 곧 좌절했다. 하루 8시간 근로해 일당은 4만4,000원 가량, 월급으로 따지면 88만원에 불과해 결국 지원을 포기했다.
서울시가 18세 이상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도입한 '서울형 뉴딜일자리'사업이 속속 진행되고 있지만,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자리에 정작 청년들이 신청을 기피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근로기간이 4~5개월로 짧은 데다 급여도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한 탓이다.
14일 서울시에 따르면 5월부터 서울형 뉴딜일자리의 일환으로 사업이 진행될 계획이던 '서울형 신택리지 사업'과 '3차원 실내공간 모델링 구축 사업'이 신청인원 미달로 추가모집에 들어갔다.
'서울형 신택리지 사업'은 인문학을 전공한 18세 이상의 청년들을 모집 중이지만 14일 현재 모집 인원(100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7명이 지원한 상태다. 건축ㆍ토목 관련 전공자를 뽑는 '3차원 실내공간 모델링 구축 사업'의 경우도 비슷하다. 화재나 재난에 대비해 서울 시내 건물의 3차원 입체 평면도를 제작하기 위한 이 사업 역시 정원이 50명이지만 지원자는 33명뿐이다.
서울시가 265억원을 투입한 서울형 뉴딜일자리 사업은 그동안의 공공 일자리 사업이 쓰레기 줍기나 업무 보조 등 단순 일자리에 집중됐던 것과 달리 관련 분야 전문성을 가진 청년들이 경력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열악한 급여 수준 때문에 '고급 청년 인력'을 활용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해졌다.
신택리지 사업의 급여는 하루 8시간 근로시간 기준으로 3만9,000원, 시간 당 4,890원 가량이다. 2013년 최저임금(4,860원)보다 30원 많은 액수다. 좀더 전문적인 경력이 필요한'3차원 실내공간 모델링 구축 사업'은 월 급여가 160만원 수준이지만 이 역시 높은 수준은 아니다.
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은 "서울시가 청년들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 기간 동안의 경력을 토대로 사회에 진출할 수 있게 하려는 취지에는 공감을 하지만 현재 추진중인 사업들의 경우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 정도에 맞춰져 있다"며 "당장의 생계가 열악한 청년 실업자들을 배려한 근로조건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1년 미만인 근로 기간에 대한 지적도 있다. 박진희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결국 사업을 통해 청년들의 경력 쌓기에 도움을 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일반적으로 취업시장에서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의 근로 기간(1년)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임금이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일자리 사업과 관련해 실시하는 교육을 내실화하고, 사업 종료 후 관련 기업과 연계해 경력을 인정받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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