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 소음에 따른 이웃간 갈등이 살인 등 극단적 폭력행태로 계속 표출되고 있지만 이를 미연에 방지할 법적, 사회적 조정 내지 중재 기능이 제 구실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이해가 엇갈린 당사자들만으로는 갈등과 감정만 키우는 경우가 많아 이웃이나 제도적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3일 인천에서 층간 소음 문제로 집주인이 1층 세입자와 다투다 불을 질러 2명을 숨지게 한 참변도 양 당사자에게만 문제해결을 맡겨둔 채 갈등 조정을 하지 않아 화를 키운 경우다.
경찰과 이웃 주민 등에 따르면 다가구 주택 1, 2 층에 살았던 집주인 임모(72)씨와 세입자 조모(50)씨는 10년 전부터 큰 다툼 없이 살아왔다. 하지만 1년 전쯤 임씨는 1층에 사는 조씨가 작은방에 설치한 샌드백을 두드릴 때 울리는 진동과 소음에 항의하다 조씨와 말다툼을 했다. 말다툼 뒤 샌드백은 철거됐지만 감정이 상한 임씨와 조씨는 지난 1년 동안 서로 대화를 단절한 채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경찰 관계자는 "주변 사람들 말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두 사람 사이에 대화는 거의 없었고 가끔 충돌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임씨는 외출 후 집에 들어오다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는 조씨와 마주치자 "왜 계속 시끄럽게 하냐"고 따졌다. 조씨는 "소란 피운 적 없다"고 맞서면서 감정이 축적된 임씨가 손도끼를 휘두르고 방화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이 과정에 이웃의 적극적인 중재도 없었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화해와 합의를 유도하는 법적, 사회적 조정기구의 도움을 받지도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두 사람이 갈등을 겪는 동안 경찰이나 구청에 소음문제로 신고를 하거나 조정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물론 제도적인 조정기구가 있기는 하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 층간 소음 갈등을 다루는 지방자치단체 산하 지방환경조정위원회를 찾을 경우 구비 서류, 수수료 등 절차가 복잡하고 분쟁을 처리하는 데만 8개월 정도 시간이 걸린다. 조정위원회에서는 조정ㆍ배상 기준을 주간 45데시벨(㏈), 야간 35데시벨로 1분간 유지되는 것을 규정하고 있지만 층간 소음의 경우 산발적이고 단발적이기 때문에 소음 측정 자체가 쉽지 않아 입증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상 사소한 층간 소음 분쟁을 중재, 조정하기 어려운 셈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환경부는 지난해 3월부터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를 설치, 전문 상담과 조정을 하고 있지만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적극적 홍보나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 센터의 현장진단 인력은 10명 수준이어서 현장측정진단이 수도권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주민자치기구의 조정 기능 강화를 현실적 해결책으로 꼽는다. 차상곤 주거문화연구소장은 "현실적으로 전문 조정기관이 부족한 상황에서 주택과 아파트의 특성과 생활 패턴에 맞게 주민자치기구에서 규약을 만들고 정부에서는 이를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에서는 지난 2월 관내 아파트 단지 내에 '층간소음운영위원회'를 구성, 규율을 마련했고 인천시에서도 지난달부터 인천아파트연합회의 협조를 통해 단지마다 층간소음 관리위원회 설치를 권장하는 등 해결에 나서고 있다.
이환직기자 slamhj@hk.co.kr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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