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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희 칼럼/5월 15일] 아버지와 방패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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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희 칼럼/5월 15일] 아버지와 방패연

입력
2013.05.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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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아버지가 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입니다. 일주일에 서너 번 찾아가 간병과 말벗을 하면서 병상 곁에서 밤을 지키곤 했는데, 아버지가 서너 달 이상 살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를 주치의한테 듣고 나서, 하루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아버지한테 잘못한 실수를 몇 가지 털어놓고 용서를 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저지른 잘못이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지만, 그 몇 가지는 늘 가슴속 한구석에 가시처럼 박혀 있어서, 이 상처를 달래는 것은 오히려 나를 위해 필요한 절차였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입니다. 반세기 전의 일인데도 내 기억엔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설을 맞아 외가에 세배를 갔더니 외할아버지가 방패연을 만들어 두셨더군요. 얼레에 무명실까지 감아서. 그때 우리 식구는 제주시내에 살고 있었고 외가는 십리쯤 떨어진 시골(지금의 노형)인데, 버스 왕래도 없던 시절이라 가는 데에만 한 시간은 족히 걸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 들길은 띄엄띄엄 떨어진 마을들을 에돌고, 돌담을 둘러친 밭들 사이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연을 띄웠는데, 싸락눈마저 섞이는 바람 속에서 연은 신나게 나풀대며 허공을 치솟았습니다. 그 시절 아이들에게 연날리기와 팽이치기는 일상적인 겨울철 놀이여서, 나도 웬만큼은 얼레질을 할 정도였지요. 얼레에 감긴 실을 풀었다 감았다 하면서 연을 조종하는 사이 이마엔 어느덧 땀방울이 송송 맺혀 있었습니다.

길을 반쯤 왔을 때입니다. 옆에서 걷고 있던 아버지가 "나도 한번 해볼까?" 하시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얼레를 넘겨드렸는데, 아버지가 얼레를 잡고 한두 번 당기는 시늉을 하자 그만 실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공중에 치솟았던 연은 곤두박질치는 게 아니라, 때마침 불어온 바람을 타고 더 높이 솟구치며 멀리멀리 날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연을 찾아다 달라고, 왜 그리 떼를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집에 가서 더 좋은 연을 만들어주겠다고 아버지가 그렇게 달래고 어르는데도, 옆에서 어머니가 타이르고 야단까지 치는데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징징거리다 못해, 할아버지한테 가서 연을 다시 만들어달라고 하겠다고 억지를 부렸던 기억도 납니다.

결국 아버지는 바짓단을 걷어 올리더니 길가 돌담을 타고 넘어갔습니다. 밭을 건너고 돌담을 넘고, 또 밭을 지나고 돌담을 넘고…, 그렇게 수백 미터를 걸어가서 아버지는 연을 찾아 들고 돌아오셨습니다. 그때쯤 이미 나는 잘못했다는 생각에 고개를 떨구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끊어진 실을 잇고 연을 다시 날리면서 "옛다!" 하고는 얼레를 내 손에 쥐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무 소리도 못한 채 몇 걸음 연을 날리며 가다가 슬그머니 실을 감아 들였습니다.

그때 일이 왜 그렇게 큰 잘못으로 기억에 새겨져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오래 전의 일인데도 그때 아버지에 대해 느꼈던 죄송함, 또는 나 자신에 대한 민망함은 기억의 생생함만큼이나 또렷하게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심경을 아버지한테 털어놓고, 행여나 아버지 심중에 주름진 구석이 있다면 풀어드리고 싶었던 것이지요. 나는 솔직히 이 일을 아버지가 잊어버렸을 거라고,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연을 찾으러 가는 도중에 쌓인 눈으로 질퍽해진 밭이랑에 빠져 구두를 더럽힌 일까지 덧붙이며 오히려 그때를 즐겁게 추억하시더군요.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절실하게 느낀 것은 바로 '아버지의 존재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니, 아버지라는 존재의 의미를 그때 처음으로 인식했다고 해야 할까요. 나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줄 수 있는 아버지가 있다는 안도감―그것만큼 자식에게 큰 용기와 위안을 주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나도 아버지가 된 지 어느덧 35년 세월이 지났습니다. 나는 과연 어떤 아버지일까? 아들을 볼 때마다 종종 화두처럼 곱씹곤 합니다. 이 글을 읽는 아버지들도 그럴 테지요. 당신은 과연 어떤 아버지인가요?

김석희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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