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리뷰] 극단 Da의 '어른의 시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리뷰] 극단 Da의 '어른의 시간'

입력
2013.05.14 12:11
0 0

남자는 교사였다. 20년 전 자기 반에서 집단 따돌림에 의한 학생 살인 사건이 벌어져 교사직을 그만 두게 됐다. 무대 속의 그 날은 살인을 저지른 왕따 학생(창수) 등 당시 그 반 소속 학생들이 모여 19주기를 여는 날이다. 은퇴 교사는 한적한 농촌에 있는 자기집으로 제자들을 불러, 모두의 의식을 옥죄는 트라우마를 일거에 날려버리고 싶었다. 극단 Da의 '어른의 시간'은 왕따 문제와 학교 폭력을 주제로 2000년 일본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리얼리즘과 표현주의라는, 쉬 공존할 수 없을 듯한 어법이 병행되면서 무대는 감춰진 내면으로 순간 이동한다. 천연덕스런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과거의 악몽이다. 애써 유쾌한 척 해 보지만 분위기는 왠지 짓눌려 있다. 한적한 농촌이라 유난히 크게 들리는 새 쫓는 총성이 이들의 의식을 헤집어 놓는다. 과거의 악몽은 은폐되었지만 잊을만하면 들리는 총성이 울려 퍼질 때마다 되살아난다. 때 맞춰 조명은 암전 수준으로 급격히 낮아진다. 배우들은 얼어 붙듯 정지한다.

반감과 증오, 위선은 20년이 지나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교사는 창수가 나쁘다며 당시 반 아이들이 자기한테 보내온 편지 뭉치를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가 그 날 제자들이 모인 앞에 공개했다. 이 대목에서는 교사의 위선적 태도 보다 왕따들의 분노가 더 솔직하게 느껴진다.

진정한 화해라는 명분으로 초대된 옛 왕따 학생은 보란 듯 다수의 위선적이고도 안이한 기대를 일거에 허물어버린다. 그의 단짝이었던 말썽꾼을 그 자리에 데려 온 것이다. 20여년 만에 모인 옛 급우들 앞에서 두 사람은 그 동안 분출하지 못한 극도의 적의를 드러낸다. 공포 영화에서나 보던 진짜 전기톱에 시동을 걸자, 굉음이 폭발하고 기름 냄새가 자욱해진다. 상징과 은유가 강했던 일본 무대보다 보다 이번 국내 무대가 더 직접적인 이유다.

도입 대목에서 10여분 가량 나오는 테러와 전쟁 등 보도 영상 또한 일본 무대에서는 없었다. 각색ㆍ연출자 임세륜씨는 "왕따는 물론 전쟁과 테러의 원인 역시 차별에 있다는 메시지를 제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6월 2일까지 예술공간서울.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