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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5월 15일] 해운업계의 '찢어진 우산'

입력
2013.05.14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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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준 우산을 정작 비가 올 때는 빼앗는 게 은행이라는 말을 한다. 호황일 때는 서로 돈 갖다 쓰라고 난리를 치다가도 막상 불황이 닥쳐 한 푼이 아쉬울 땐 인정사정 이 대출 회수에 나서 기업의 목줄을 죄는 행태를 야유하는 얘기다.

그럴 듯하지만 옳은 비유는 아니다. 자금은 우산처럼 선심으로 주고 받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은행가들은 말한다. “성공적인 사업엔 애써 자금을 더 빌려 줘야 이자수익을 늘릴 것이고, 위험한 사업에선 서둘러 대출을 회수해야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 호ㆍ불황을 감안해 적절히 자금을 운용하는 것이야 말로 기업의 본질적 책무 아닌가.”

은행의 항변엔 빈틈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늘 은행이 야박하다. 조금만 도와주면 어려움을 넘길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요즘 혹독한 시련기를 지나고 있는 해운업계의 속내가 그렇다.

STX그룹 해체로 조선업의 위기가 널리 알려졌지만, 해운업 역시 그 이상으로 험난한 위기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빅 3’ 해운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STX팬오션은 지난해에만 8,500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2007년 이래 해운선박의 과잉공급과 글로벌 경기불황에 따른 물동량 증가세의 둔화, 3년 전에 비해 두 배 가까운 톤당 635달러까지 치솟은 연료유 가격의 ‘삼각 파도’에 휩쓸린 탓이다.

올 들어 경기회복 지연으로 상황은 점입가경이다. 업계 3위인 STX팬오션은 그룹 해체에 따라 이미 매물로 나온 상태이고, 4위였던 대한해운은 법정관리에 이어 상장폐지 직전까지 몰렸다. 가장 고통스러운 건 유동성 위기다. 영업이익이 없으니 호황 때 운송능력 확대를 위해 선박을 늘리는 과정에서 발행한 회사채를 막기조차 버겁다. 호황 땐 순조롭던 채무 롤오버(만기연장)도 어렵고 대체자금 조달도 힘들다. 업계 2위인 현대상선만 해도 올해 만기가 닥치는 7,200억 원의 회사채를 감당하기 위해 이미 우선주와 보유 선박 매각에 나선 상황이다.

업계는 다급하게 금융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보다 부담 없는 조건의 롤오버, 저금리 대체자금 조달, 영구채의 자본 인정 등을 요구하고, 2조원 규모의 해운보증기금의 설립을 신설된 해양수산부와 함께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은행과 당국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은행은 채권 관리규정과 시장논리를 내세울 것이고, 관료들은 지원의 정당성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위기 산업의 도태를 막기 위한 정부, 또는 공공지원이 어느 정도까지 정당한지는 늘 예민한 딜레마이기도 하다. 무한대로 지원했다면 심지어 한보철강 같은 기업도 망했을 이유가 없다. 위기 때마다 정부가 지원하여 연명하면 구조조정은 영원히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운업은 교과서적인 논리만으로 방치하기엔 너무 중요하고 아쉬운 산업임에 틀림없다. 반도체와 자동차에 뒤 이어 연 매출 40조원을 기록하는 우리 중추산업이다. 매출의 90% 이상을 외국에서 벌어들이는 절대 수출산업이기도 하다. 직접고용 5만여 명에 조선 등 연관 산업 고용효과까지 감안하면 일자리 창출력 역시 막대하다. 시장 선점효과가 제조업에 비해 훨씬 강력한 서비스업의 특성상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 등이 글로벌 해운사로서 확보한 최고의 평판이 흔들리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창조경제를 얘기하지만 ‘한강의 기적’은 종종 교과서를 뛰어 넘는 과감한 파격이 밑거름이 됐다. 과거 한갑수 가스공사 사장은 LNG선을 발주할 때 프랑스 조선사의 단가가 국내 조선사보다 척당 3,000만 달러 이상이나 쌌지만, 국내 조선사 발주를 결행했다. 당사자는 감사까지 받았지만, 그게 국내 LNG선 건조기술 도약의 초석이 됐다.

31일은 바다의 날이다. ‘찢어진 우산’을 든 채 웅크린 우리 해운업의 부활을 기약할 창조적 금융지원의 여지를 모색할 때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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