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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5월 15일] 교과서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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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5월 15일] 교과서의 역설

입력
2013.05.1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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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은 음탕교과서요 심청전은 처량교과서요 홍길동전은 허황교과서라." 1910년에 나온 이해조의 신소설 의 한 구절이다. 요즘 식으로 바꾸자면 춘향전은 야동이요 심청전은 신파멜로요 홍길동전은 무협판타지쯤 되겠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애국계몽'에 걱정이셨던 분들은 이따위 책들에 너나할 것 없이 정신이 팔린 세태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교과서'마냥 읽힌다며 비아냥을 샀던 춘향전, 심청전, 홍길동전은 이제 진짜로 교과서에 실리는 고전이 되었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교과서에 실리면서부터는 누구도 이 이야기들에 넋을 빼앗기는 일이 없게 되었다. 음탕교과서와 처량교과서와 허황교과서를 순화하여 '교과서적으로' 충․효․열이나 강조하니 도리가 없다. 따분할 밖에.

'교과서'란 교육용 교재다. 하지만 가르침과 배움이 행복하게 만나는 일은 생각만큼 많은 것 같지 않다. 가르침이 노골적이면 배워야 하는 쪽이 발을 뺀다. 교과서에 실린 춘향전, 심청전, 홍길동전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이유다. 반대로 가르침의 장력을 벗어난 것들은 알게 모르게 배움의 대상이 된다. 100년 전의 춘향전, 심청전, 홍길동전이 음탕함과 처량함과 허황함으로 '교과서'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다.

희한한 일이다. 가르치려 덤빌수록 가르칠 수 없고, 가르치지 말아야 겨우 가르칠 수 있다니. 어째야 좋은 걸까. 좋은 스승이 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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