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13일 '윤창중 성추행 의혹 사건'과 관련해 해외순방 매뉴얼 작성 등 뒤늦은 수습책 마련에 나선 가운데 이번 사건에서 고스란히 노출된 취약한 위기관리시스템에 대한 대폭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거세다.
이번 사건이 비록 윤 전 대변인 개인의 돌발적 행동에서 촉발됐다고는 하지만 상황 파악 및 사후 수습 과정에서 청와대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 파문을 키웠기 때문이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에게 늑장 보고한 것을 두고 청와대 참모로선 있을 수 없는 책임 의식과 상황 판단력 결여란 비판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이남기 홍보수석이 사건을 처음 접한 시점으로부터 26시간이 지나서야 보고를 받았다. 청와대 참모가 하루 이상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린 심각한 기강해이가 발생한 것이다. 청와대는 외교 일정과 진상 파악에 시간이 소요됐다고 변명하지만 초동 대응부터 우왕좌왕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했다면 박 대통령의 미국 의회 연설 뒤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하는 비행기에서라도 보고해야 했다.
허태열 비서실장과의 상황 공유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한국에 남은 청와대 직원들은 한국으로 오는 '1호기'만 쳐다보는 실정이었다. 지휘체계가 무너진 것이다.
이 수석이 서울에 도착한 뒤에도 윤 전 대변인의 중도 귀국에 대해 일목요연한 설명보다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만 반복하고 부하 직원에게 부연설명을 맡기는 등 청와대 어느 누구도 총대를 메는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력 미흡도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는 이번 사건을 두고 나흘에 걸쳐 3차례 사과했다. 10일 밤 홍보수석, 12일 비서실장에 이어 13일엔 박 대통령의 입에서 "국민께 송구하다"는 언급이 나왔다. 이 수석은 "국민과 대통령께 사과"란 표현으로 '셀프 사과' 논란을 초래하며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전대미문의 사건을 대처하는 과정에서 정무적인 감각이 실종된 셈이다. 이미 지난 3월 고위직 낙마 사태 때 '17초 대독사과' 비판을 받은 청와대다.
이런 상황에 내몰려 나온 허 실장의 사과는 진정성을 인정받기 힘들었다. 이러다 보니 사과 주체의 직급은 올랐지만 되려 사과의 격은 추락시킨 꼴이 됐다. 일부에선 처음부터 참모들이 나서 박 대통령의 사과를 건의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곽상도 민정수석이 윤 전 대변인에 대한 중도 귀국 지시 여부에 대해 한국법과 미국법 모두 문제될 여지가 없다고 언급한 것 역시 법적인 문제를 떠나 국민정서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청와대의 보안의식 결여도 노출됐다. 윤 전 대변인은 자료 전달 편의 등을 위해 여성 인턴에게 자신의 숙소 열쇠를 맡겼다.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거의 모든 일정을 함께 소화한다. 그럼에도 인턴에게 대통령 일정 관련 자료가 놓여 있을 숙소 열쇠를 준 것은 안이한 보안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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