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제50회 스승의 날을 맞았으나 스승을 공경하고 제자를 키우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풍토는 예전만 못하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교육 이외의 과중한 업무도 한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공문처리 등 각종 행정업무와 기타 잡무로 학생생활지도는 물론 수업과 교수 준비 시간조차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게다가 아직도 연공서열 위주에다가 획일적이고 서류 중심의 평가시스템은 실력 있고 성실한 교사 보다는 서류를 잘 만들어 ‘점수’를 잘 따는 사람이 우대받는 일도 초래하고 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일선 교육현장의 공문폭탄과 교사 업무 경감 실태, 왜곡된 각종 평가시스템 등을 3회에 걸쳐 짚어 보기로 했다. 편집자주
"작년 한 해 동안 처리한 공문이 1,000건이 넘는다. 학교가 교육기관인지 행정기관인지 헷갈린다. 아니 주객이 전도됐다. 갈수록 새로운 일이 생기는데, 사람은 그대로다. 수업준비도 벅찬데 언감생심 학생 생활지도는 엄두도 못 낸다."
교육 당국이 각종 교사업무경감책을 내 놓고 있지만, 일선 교육현장에서는 각종 잡무는 줄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각종 공문서 작성 등 행정업무가 많아 교사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이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연구소가 최근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 교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수업을 제외한 전체 업무의 29% 정도가 행정업무라고 답변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
3월 신학기 시작과 함께 학급조직 및 수업계획보고, 학생 개인별 특성파악 및 개별상담 등 교사 고유의 업무부터 각종 정보공시, 연수안내, 수업공개계획 등 온갖 공문이 쏟아진다. 상급기관에서 내려오는 공문 중에는 연수안내 등 단순이 열람 여부만 확인하면 되는 것부터 별도의 조사와 기안이 필요한 것까지 한도 끝도 없다.
김모(45) 교사는 "국정감사나 의회감사가 있을 때면 몇 년 치 자료를 한꺼번에 요구하는데, 해마다 보고하는 자료인데도 새로 요구하고, 같은 내용을 이름만 달리해 5, 6건이나 되는 것도 허다하다"며 "교육과 전혀 관계 없는 외부 기관의 협조공문은 왜 그리 많은지"라고 말했다.
업무효율성을 위해 만든 '업무포털'과 투명한 행정 등을 위해 도입한 에듀파인(지방교육행정ㆍ재정통합시스템)이 공문 및 잡무 증가를 야기하고 있다.
대구 A초등학교 B부장교사는 "전산화로 공문생산과 유통이 쉬워져 되레 공문 수가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며 "공문 유통량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게시판에 올려 놓는가 하면 전자우편으로 업무보고를 하는 일도 있다"고 토로했다. 또 "에듀파인 도입 이후 예전에는 행정실에서 알아서 처리하던 것을 이제는 담당 교사가 단돈 500원짜리도 에듀파인을 검색해 구매하고 영수증을 출력해 보관해야 하는 바람에 엄청난 부담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교육복지 다문화교육 방과후교육 학교폭력대책 등 과거에 없던 새로운 업무가 생기고 있지만, 전담인력을 확충하지 않아 특정 교사들에게 과부하가 걸리는 것도 문제다. 대부분 교사들이 꺼리다 보니 이 같은 업무는 주로 젊은 교사들 몫이다.
C초등학교 D교사는 지난해 교육복지 업무를 맡은 뒤 1년 간 교실 한 구석에서 눈물을 흘린 날만 두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다른 학생 모르게 편부모나 조손가정, 기초생활수급자 등의 학생을 선발하고, 연간, 월간, 주간 등 각종 계획을 수립하는 일부터 학력신장ㆍ문화활동ㆍ캠핑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해야 했다. 분기별 보고서를 작성하고 학부모 코멘트를 받아 교육청에서 평가회를 여는 등 거의 혼이 빠질 정도였다. 시교육청은 중학교부터 전담교사를 확대 배치 중이지만, 아직 상당수 학교에는 현직 교사가 이 일을 맡고 있다.
E중학교에서 방과후교육 담당을 맡았던 F교사는 매주 토요일에도 출근하는 등 격무를 견디다 못해 휴직을 생각하기도 했다.
한 교사는 "다문화 등 새로 생긴 업무는 주로 연차가 짧거나 만만한 교사에게 맡기게 되는데, 그렇다고 다른 업무를 줄여주는 것도 아니어서 코에 단내가 난다"며 "갑작스레 각종 복지수요가 늘면서 일선 행정기관의 사회복지직공무원들이 자살하는 게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탄식했다. 또 "일선 학교의 공문 중 상당수는 교육과 무관한 것들이기 때문에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교사들이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 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한다. 잡무로 인해 생활지도는커녕 수업과 교수준비 할 틈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교사는 "수업과 교수준비에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공문 등 잡무에 치이다 보면 애들 하나 하나를 살필 시간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며 "학교폭력근절은 입시위주 교육을 지양하고 교사와 학생들이 마음을 열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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