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음)자리표, 도돌이표, 버금딸림음 같은 예쁜 말들이 붕붕붕 울리는 풍금소리를 타고 까까머리 아이들 올망졸망한 교실에 감돈다. 맞아, 옛날에 그렇게 고운말들로 노래를 배웠었지, 하며 마음이 환해졌다. 클래식 월간지 최근호에 실린 한 피아니스트에 대한 회고 기사는 그렇게 추억의 순수 우리말 음악용어를 떠올리게 했다.
■ 기사의 인물은 해방 이래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한 고 김형근(1918~1982) 선생이다. 부친이 구한말 홍문관 교리를 지낸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 음악의 길로 나아갔다. 명문 도쿄예술대학 음악학부를 졸업하고, 취리히 콘서바토리움 피아노 연주 대학원을 마쳤다. 서울대와 효성여대 교수를 지내며 내로라하는 제자도 길러냈다. 음악사에서 희미해진 선생을 새삼 회고하는 건 순수 우리말 음악용어 때문이다.
■ 해방 후 일제 청산의 민족적 열기가 들끓었다. 한글학계의 거목 외솔 최현배 선생이 편수국장을 맡은 미군정청 문교부에서도 교육용어의 한글화에 나섰다. 알려지기론 지휘자 금난새씨의 부친인 금수현(1919~1992) 선생이 초기 음악용어제정위원회에 참여하고, 56년부터 문교부 편수관을 맡아 용어 한글화를 주도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이번에 가 소개한 48년 발행 김형근 저 엔 이미 높은자리표나 도돌이표 같은 우리말 용어가 전면 등장해 그 전에 이미 관련 작업이 상당히 진행됐음을 보여준다.
■ 을 발굴한 건 민경찬 한예종음악원 교수다. 그는 “김형근 선생은 금난새 선생보다 최소 6년 이상 앞선 1950년 이전에 이미 편수관을 지내고 같은 순수 우리말 용어를 전면 적용한 이론서를 잇달아 펴냈다”며 “소실된 역사를 밝혀줄 매우 흥미로운 사료”라고 말했다. 김 선생은 자녀들이 음악 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 아들인 김준규 전 검찰총장은 “당시 음악인들 사이에 용어 한글화에 뜨거운 공감대가 있었고, 선친께서 기여하셨다는 얘길 뒤늦게 전해 들었다”며 “정밀한 연구를 통해 음악사의 뜻 깊은 한 시기가 오롯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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