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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윤창중의 대북(對北)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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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윤창중의 대북(對北) 선물

입력
2013.05.1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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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망신을 산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태에 북한 매체들이 신났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2일 "청와대 안방주인의 외국행각 도중 고위수행원이 부끄러운 추태를 부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실패한 행각"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조선중앙통신은 전대미문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남한과 국제사회의 반응을 자세히 소개했고,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남조선 보수패당만이 세울 수 있는 수치스런 기록"이라고 비난했다.

박 대통령의 첫 방미와 한미정상회담에서 자신들을 향한 유화적 메시지가 나오길 은근히 기대했을 법한 북한이다. 그런데 당근은커녕 채찍 휘두르는 소리만 들려오자 "조선반도와 지역정세를 긴장시키고 전쟁 위험을 증대시키는 위험천만한 전쟁 전주곡"이라고 맹비난하던 터에 이 사건이 터졌으니 쾌재를 부를 만도 하다. "윤창중으로 말하면 거친 언행과 어지러운 과거경력 때문에 임명 당시부터 부실인사 논란의 주인공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던 인물"인데 박 대통령이 그를 한사코 등용하더니 끝내 대가를 치렀다는 북측 매체의 주장은 가소롭기는 하지만 틀린 얘기는 아니다.

윤창중 소동과는 별개로 박 대통령의 방미 결과가 한반도 위기해소 돌파구를 마련하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겐 꽤 실망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대북정책의 핵심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든든한 지지를 이끌어냈고, 도발에 대한 엄중 대처와 동시에 대화 의지를 공동으로 확인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이 이번에 오바마 대통령과 한반도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넓힌 것은 자신감을 갖고 주도적으로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남북간 신뢰는 마냥 부드럽게 상대한다고 형성되지 않는다. 압박과 포용을 정교하게 결합하는 외교적 역량이 필요하다. 김대중ㆍ노무현의 진보정권과 이명박 보수정권의 경험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방미를 통해 압박과 포용을 유연하게 구사할 수 있는 운신의 공간 확보에 주력했고 상당부분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바로 그 순간에 윤창중 소동이 모든 것을 한방에 날려 버렸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대통령이 몹시 상심한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언론과 야당, 심지어 여당 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변인으로 임명한 그에 대한 배신감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13일 귀국 후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청와대 직원들의 공직기강을 바로 세우겠다고 결연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른 시일 내에 국정동력을 되살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인사실패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셈이다. 임기 초 첫 한미정상회담 후 광우병 쇠고기 파동으로 국정동력을 상실한 이명박 정부를 떠올리게 한다.

문제는 그 와중에 남북관계 돌파구의 실마리를 찾는 일이 한없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하루하루 입주기업들의 속이 타 들어가고 있는 개성공단 문제 해결에도 힘이 실리기 어렵다. 이번 한미정상회담 결과로 수세에 몰릴 뻔한 북한은 더욱 기세 좋게 대남공세를 계속해갈 게 뻔하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활착의 계기를 못 찾고 당분간 공허한 외침에 머물 수밖에 없다.

윤창중 전 대변인은 자신이 그렇게 증오하던 북한 정권에 엄청난 선물을 안겨준 셈이다. 그를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하는 것에 반대하는 여론을"종북ㆍ좌파 세력의 음모"로 몰아가던 보수 논객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한 보수 논객은 "하루 빨리 혐의를 벗어나 다시 예전의 의병으로 와서 친노 종북이들과 최전방에서 싸우라"고 여전히 윤씨를 싸고 돌았다. 극단에 서있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다. 누가 북한을 이롭게 하는지를 놓고 종북, 반북을 구분하는 게 무의미한 세상이기도 하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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