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이 넘어서도 마라톤을 완주하거나, 80대임에도 생업 현장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어르신들에 견주면 별 것 아닐지도 모를 얘기지만, 소박한 사연 하나 들려드리고자 한다. 희대의 '청와대대변인 성추행사건'으로 나랏일은 소란스럽지만, '가정의 달' 5월이니 필자 가정의 사적인 얘기 한 번 들어주시기 바란다.
올해 74세이신 어머니로부터 며칠 전 문자메시지가 왔다. 문자 수신알림이 울려 열어보니, 발신자가 어머니 아니신가. 흥분될 정도로 놀랐다. 바로 전화를 드렸다. 노인정의 무슨 교육프로그램에서 문자발송법을 배우셨단다. 아직 쌍받침은 좀 헷갈리신단다. "알고 나니 이렇게 간단하고 재미있구나, 하하" 전화기 너머의 어머니는 활기가 넘쳐났다.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하시는 분에게 아무 짝에도 필요 없는 '대리운전'이나, 돈 가져다 쓰라고 부추기는 스팸문자들을 받기만 하시다가, 당신이 직접 문자메시지로도 아들과, 세상과 '교신'할 수 있게 된 걸 대단히, 대단히 유쾌해 하셨다.
아들이 출연한 TV프로그램을 보시다가, 넥타이 색깔이 마음에 덜 드셨던 모양인데, 노인정에서 배운 것을 처음으로 써먹어 보신 거였다. 비록 맞춤법은 몇 군데 틀렸지만, 나는 그 오타투성이 문자가 명절 때나 겨우 한 번 뵙는 어머니 얼굴보다 더 살갑고, 떨렸고, 눈물겨웠다.
'소외'되지 않아야 덜 늙는다. 아니, 늙고 늙지 않고를 떠나서, 소외는 인권유린이자 폭력이다. 5년 전 휴대폰을 사드리면서, 괜히 스트레스 받으실까 봐 문자발송방법 같은 거 알려드릴 생각은 아예 안 했었다. 전화 걸고 받는 것과, 자식들 연락처 단축번호 입력만 해드렸다. 어머니의 문자를 받고서, 그 때의 내 단견이 한없이 송구스러워졌다. 나 스스로 어머니를 '제한'시켰던 것이다. 소외시켰던 것이다. 어머니가 가지실지도 모를 소외감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을 못했다. 헛똑똑이 아들이다. 현 정부가 정권의 명운을 걸고 척결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선 '4대 악(惡)' 중 하나인 왕따와 학교폭력의 본질도 소외이다.
주요 공직자 인사 난마(亂麻)와 낙마(落馬)에 이어, 급기야 청와대대변인이 대한민국 최대의 국사(國事)라는 한‧미 정상회담 도중 저지른 전대미문의 성추행사건으로 국격이 땅에 떨어지는 등, 새정부 출범 후 하루도 조용할 틈이 없었던 지라, 기초노령연금과 복지공약 후퇴논란은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는 상태다. 공약수정이나 후퇴의 합리적 이유와 대국민 설득 없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서는 안 된다. 노인자살률 최고 국가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서 기초복지보장과 노인 일자리 만들기는 현 정부 최우선 역점 사항이다.
삶의 질은 '안정적 세 끼 밥'에서 출발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심신의 조화로운 건강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그러려면 역시 돈이 문제다. 철밥통으로 상징되는 공기업ㆍ준정부기관들의 방만 경영에 들어가는 혈세를 철저히 줄여야 한다. 오로지 관례상, 특급호텔에서 여는 관ㆍ민 차원의 각종 불요불급 행사도 없애야 마땅하다. 사회ㆍ경제적 강자들의 탈세, 물론 뿌리 뽑아야 한다.
또, 포스코에너지 '라면상무'와, 남양유업사태에서 극명히 드러난 착취적 '갑을 병폐'를 경제민주화 차원에서 접근해 '경제생태계 체질'을 개선해야 국가 자원의 왜곡된 배분을 바로잡을 수 있다.
필자 노모의 문자메시지 하나로 호들갑 떨자는 게 아니다. 오늘 이 땅의 일상사이자, 청‧장년 세대 모두에게 곧 닥칠 문제이기에 하는 말이다. 빈 라면박스나 파지를 싣고 비탈길을 힘겹게 오르내리는 노인들을 이대로 두고 국민대통합과 희망의 새시대를 외치는 건 공염불이다.
복지정책 담당자들에게 촉구한다. 사회경제적 약자나 노인들의 소외감을 최소화시켜, '나도 세상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동류의식과 소속감 강화에도 정책 초점을 맞추시라.
어머니, 아니 엄마!
문자메시지 배우셨으니, 이제 이메일과 페이스북에도 한 번 도전해보시는 건 어떠세요? 제가 '친구신청'할게요!
이강윤 시사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