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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현장에 답이 있다

입력
2013.05.1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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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답이 있다.

김영삼정부 때니까 근 20년 전 이야기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로 접어들기 전까지 국내외 경기는 대단한 호황이었다. 거품 경제가 한몫 한 것이지만 각종 개발 붐에 따라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공사가 이뤄졌다.

공사가 많다 보니 사고 건수도 적지 않았다. 여기서 문제는 인명 피해가 극심한 대형 사고가 너무 자주 발생했다는 데 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눈만 뜨면 사고 소식이 언론 지상을 뒤덮었다.

대구에서는 지하철 공사장이 붕괴돼 10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서울 아현동에서는 도시가스 배관이 폭발해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동대문에서는 지하 공동구에서 화재가 발생해 주요 기간 시설의 각종 연결망이 불에 탔고, 마포에서는 지하 가스 배관이 폭발해 한동안 난리가 벌어졌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던 때도 이 시기였다. 가히 '사고 공화국'이란 오명이 덧씌워질만 했다.

느닷없이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왜 꺼내냐고 따질지 모르겠지만 최근 산업 현장의 돌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점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에 다소 장황하게 서론을 썼다.

올 1월 불산 누출사고로 5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사업장에서는 2일 또 다시 불산이 누출돼 3명이 다쳤다. 또 10일에는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 제강공장에서 근로자 5명이 아르곤 가스에 중독돼 숨졌다. 인근 주민에게 직접적 피해가 돌아가진 않는다고 하지만 어딘가 께름칙한 느낌은 현재 진행형이다.

앞서 3월14일에는 대림산업 여수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같은 달 22일에는 청주산업단지 내 SK반도체 공장의 염소가스 누출과 경북 포항 포스코 파이넥스 1공장의 폭발과 화재, 경북 구미시 LG실트론 구미 2공장 불산 혼합액 누출 사고가 동시에 터졌다. 1월에는 상주 청리산업단지와 청주산업단지에서 각각 염산과 불산 누출 사고가 났다. 이 정도면 또 어디서 무슨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조마조마한 상황이다.

잇따른 사고 소식과 관련해 20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는 국가기관이 주도한 공사 현장에서 대형 사고가 빗발쳤고, 이번에는 일반 기업의 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뿐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대형 사고 원인은 관리 감독 소홀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어떤 사고는 최근의 갑을 논쟁처럼 원청업체의 무리한 요구가 발단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지만 어쨌든 모두가 인재(人災)라는 지적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이쯤에서 '행정의 달인'이란 평가를 받는 고건 전 서울시장의 말이 생각난다. 고 전 시장은 당시 내게 "시장이 현장을 챙겨야 돼. 그러면 대형 사고는 줄일 수 있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 그가 시장 재임 시 서울시내의 공사장 사고는 거의 전무했다. 직전 시장들이 자리에 앉아 있던 시절 여기저기서 폭발음이 들렸던 것과는 대조된다.

고 전 시장의 논리는 시정의 최고 책임자가 시간을 쪼개 현장을 누빌 경우 고위 간부, 중간 간부 할 것 없이 모두가 바짝 긴장을 하게 되고, 그런 분위기가 해당 공사장 인부에게까지 전달돼 결과적으로 인재를 최대한 막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아주 단순한 논리지만 올해 들어 4개월여 동안 일어난 각종 사고를 놓고 보자. 이들 공장을 지휘하는 대기업 최고경영진이 공장 현장을 둘러보았거나 사고 예방을 단단히 주문했다는 말은 별반 들은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같은 공장에서 연달아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서 후진국형 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힘든 판에 사고 수습 과정에서 재발 방지 노력은커녕 은폐와 축소 기도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니 기막힐 따름이다.

사고도 사람이 내는 것이지만 예방도 사람이 한다. 고 전 시장의 말처럼 지휘관이 현장을 헤집고 다니면 따라오지 않을 부하 직원이 없다. 기업도 살고 직원도 사는 길은 현장에 있다.

염영남 사회부장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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