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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94> 경산 열차 추돌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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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94> 경산 열차 추돌사고

입력
2013.05.1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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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5월 14일, 부산발 서울행 116호 특급열차가 경북 경산역에서 보통급행열차를 앞지른 후 빠른 속도로 동대구 방향으로 진입했다. 2분 뒤 특급열차를 먼저 보낸 302호 보통열차도 경산역을 빠져나갔다.

특급열차가 경북 경산 경산군 고산면 매호동을 지날 무렵 고산면 산업계직원 두 명이 90cc 오토바이를 타고 건널목을 건너고 있었다. 기관사 문창성씨가 이들을 발견하고 황급히 급제동을 걸었지만 열차는 관성에 의해 오토바이 앞 바퀴를 치고 500m를 지난 후에야 멈춰 섰다. 사고를 감지한 기관사 문씨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열차를 서서히 후진시키기 시작했고 이 사실을 전혀 모르는 보통열차는 경산역을 나선 뒤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한 철로에서 후진하는 열차와 전진하는 열차. 참상은 예견됐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면 직원 2명은 열차가 달려들자 오토바이를 버린 채 철길 밑으로 몸을 던져 화를 피했지만 더 큰 대형 사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4시, 꽝 하는 굉음과 함께 보통열차가 특급열차의 뒷부분을 들이받았고 보통열차의 앞부분은 대파되고 특급열차의 7호 객차가 완전 파손되면서 8,9호 객차까지 탈선, 5m 철길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아수라장이 된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뒤꽁무니를 받힌 특급열차의 8호차는 언덕아래 논바닥으로 전복됐고 9호차는 바퀴를 하늘로 한 채 거꾸로 처박혔으며 7호차는 아코디언처럼 쪼그라졌다. 순간의 부주의가 빚은 이 사고는 승객 54명이 숨지고 253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형 참사를 낳았다.

결국은 인재였다. 특급열차의 기관사는 오토바이 충돌 사고를 후행열차에 알리지 않은 채 후진했으며 여객 전무도 수신호 임무를 행하지 않았다. 자동정지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됐고 지금의 지하철도 흉내 낼 수 없는 당시의 2,3분 배차라는 무리한 편성도 사고 원인 중의 하나가 됐다.

사고 발생 후 황해중 철도청장이 사임했고 원인을 제공한 오토바이 운전자와 특급열차 및 보통열차의 기관사와 부기관사, 그리고 선행열차 여객전무 등이 구속돼 법정 최고형인 금고 5년 등을 선고 받았다. 사고가 난 매호 건널목에는 이후 지하도가 건설됐다.

열차 사고는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1993년 3월에도 부산 구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선로 지반 침하로 전복돼 78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를 빚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은 게 안전 점검과 예방이다.

[출처] |작성자 땡자언니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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