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디자이너가 아니라 발명가라고 하는 게 낫겠다. 금호미술관의 '뉴 웨이브_가구와 신진 디자이너들'에 참가한 작가들 말이다. 30대 초ㆍ중반의 젊은 디자이너 6팀이 의뢰인, 용도, 재료 특성에 따라 만든 가구와 그 제작 과정을 소개한다. 아이디어에 영감을 준 참고문헌, 가구 소재를 가공하는 신기술과 기구들, 인체 실측 데이터와 실험 과정을 구경하다 보면, 가구 전시회가 아니라 첨단기기 전시회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눈에 띄는 작품은 김기현 문석진 이상필의 디자인그룹 '디자인 메소즈'가 만든 가구다. 대표작 '스쿨 체어'는 강남의 한 어학원 교실이 의뢰해서 만든 책걸상. "오래 앉아서 수업을 듣는 한국 학생들을 고려해서 만들었다"는 게 김기현 디자인메소즈 대표의 설명이다. 한국인의 대표 체형을 가진 6명을 섭외해 이들이 앉은 자세를 석고로 실측하고 의자의 깊이감과 등받이 기울기에서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평균치를 구해 만들었다. "보통 의자는 사람의 움직임을 감안해 몸을 편안하게 감싸는 형태로 만들어요. 반면 이 의자는 한 자세로 오랫동안 앉아 있어도 편안하게 디자인했죠."
런던디자인박물관의 '2012 올해의 디자인' 가구 부문 대상을 받은 디자인 메소드의 '1.3체어'는 무게가 1.28kg밖에 되지 않는다. 비결은 의자 소재를 수수깡만큼 가벼운 발사나무로 대체한 것. 중남미 원산인 발사나무는 일반 나무보다 빨리 자라 7,8년 만에 목재로 쓸 수 있지만 너무 무르기 때문에 그 동안 건축 모형 제작에나 쓰였다. 이번 전시에서 압축 성형을 거친 튼튼한 발사나무 의자를 소개한다. 압축 방식 연구 과정을 담은 실물 도해와 가공 전후 발사나무도 전시했다.
디자이너 이상혁의 '당신의 손에 귀 기울여요'는 한 쪽 서랍을 밀어야 다른 쪽 서랍이 열리는 탁자다. 서랍장 속 압력을 이용한 가구로 작가는 "가구를 대하는 사용자의 태도를 촉각에 집중해 개념적으로 부각시킨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아쉽게도 이번 전시회에 설계도는 소개하지 않았다. 같은 작가의 '유용한 실업자'는 건설 현장의 비계(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에서 영감을 받은 조립식 책장이다.
이밖에 디자인그룹 'SWBK'는 수입 폐목재를 재활용한 가구를, 디자인그룹 '아이네클라이네 가구'는 사용자 편의에 맞춰 제작한 책걸상을, 이광호는 가죽과 전깃줄을 꼬아 만든 소파를 선보인다. 장민승은 같은 디자인의 탁자를 재료에 따라 1만~3만원, 9만~10만원, 100만원대로 제작하고, 재료와 작품을 함께 소개한 'T 2' 시리즈를 전시했다.
최근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디자인 가구를 전시하는 일이 잦아졌지만, 신진 디자이너들의 가구를 한데 모은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가구 디자인의 새 주역과 경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전시는 6월 30일까지 한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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