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적 성과?… 굉장한 부담관련 부처의 도움이 없다면 여성부 혼자 아무일도 못해총리·장관들이 든든한 '빽''일과 가정 양립' 만병통치약은 없어모범사례 통해 철학을 다지고 정부 차원서 모든 대안 제시여성들 스스로 선택할수 있게 해야'여성 공무원 확대' 솔선수범역차별 소리까지 들어가며 수치만 억지로 맞추자는 게 아냐'여성=비생산적' 인식 바꾸자는 것
서울 중구 청계천로에 자리한 여성가족부 장관 집무실에 들어서자 창가에 놓인 대리석 두상(頭像)이 눈에 띄었다. 거친 바람을 안고 선 듯 휘날리는 머리칼, 질끈 동여맨 수건에 가려진 두 눈. '허상'이란 묘한 제목을 단 이 작품(작가 신석민)이 문화 관련 책 두 권을 쓴 '문화통'의 눈에 든 사연이 궁금했다. "현대미술관 미술은행에서 빌려 온 거예요. 추상과 구상의 조화에 운동감도 있고 안정감도 있고, 느낌이 굉장히 좋더라고요. 막막하지만 힘차게 나아가야 하는 지금의 제 처지를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고…."
조윤선(47) 여성가족부 장관은 시쳇말로 '스펙'(조건)이 화려하다.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 변호사, 씨티은행 부행장을 거쳐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뒤 최장수(665일) 대변인으로 활약했다. 지난 대선과 인수위에서도 대변인을 맡아 박근혜 대통령을 '그림자 수행'했다. 이른바 '실세 장관'으로 늘 찬밥 신세였던 여성과 청소년, 가족 정책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내리라는 기대 못지않게, 이 분야 경력이 거의 없어 전문성이 떨어진다거나 여차하면 정치판에 다시 불려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여성 대통령 시대 첫 여성가족부 수장으로서 이래저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5월 가족ㆍ청소년의 달을 맞아 더 바빠진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은 화장실 갈 때뿐"이라고 했다. 2,3일에 한 번 꼴로 이어온 현장 방문에 '여성ㆍ청소년ㆍ가족 행복 100발자국'프로젝트란 이름을 붙여 소통을 강화했고, 그 발자취를 페이스북에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취임하면서 품은 각오는 무엇인가요?
여성 대통령이 돼서 모든 면에서 여성의 삶이 나아졌다는 걸 보여줘야죠. 이게 굉장한 부담이에요. 세계경제포럼에서 산정한 '성 격차 지수'에서 우리나라가 135개국 가운데 108등이잖아요. 15%인 여성 국회의원을 갑자기 두 배쯤 늘릴 수도 없고 상대평가라 우리가 애쓴 만큼 다른 나라들도 노력하면 순위 올리기가 어려워요. 제가 걱정을 하니까 어떤 분은 워낙 등수가 낮으니 조금만 노력해도 눈에 띄는 성과가 나지 않겠냐고 위로하더군요.(웃음)
-장관 해 보니 뭐가 가장 힘듭니까?
국민 중심의 행정을 펴려면 물구나무 서서 세상을 보듯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요. 저는 이상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이걸 이루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하자고 하는데, 오래 일해 본 공무원들은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하는 게 뻔히 보이는 거예요. 할 수 있다, 해 보자, 설득하고 서로 호흡을 맞추는 단계예요.
- 책에서 사시 합격이 취소되거나 학력고사 앞두고 수학 공부가 안돼 전전긍긍하는 꿈을 자주 꾼다고 썼던데, 요즘도 그런가요?
첫 국무회의 때 대통령께서 여성의 전 생애에 걸쳐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오라고 당부했어요. 수첩에 받아 적는데 마음이 무겁더라고요. 여성가족부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거든요. 다 다른 부처의 도움을 받아야지. 그날 밤 또 학력고사를 보는데 전 과목 공부가 다 안 돼있는 꿈을 꿨다니까요.(웃음)
-여성이 대통령이 됐으니 다른 부처에서 예전보다 더 잘 도와줍니까?
여성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라, 대통령께서 당선인 때부터 부처 간 칸막이 없애고 협조하라는 말씀을 워낙 자주 했거든요. 한 백 번쯤 들은 것 같은데, 정권 끝날 때까지 만 번쯤은 하실 거예요. 이분 스타일이 뭘 하나 해야겠다 싶으면 흐트러짐 없이 계속 드라이브를 걸잖아요. 장관들 볼 때마다 얘기하는데, 서로 협조를 안 할 수가 없죠.
-'실세 장관'이 온 것도 영향이 있겠네요.
실세는 무슨… 사람들이 그냥 하는 말이죠. 저는 갑, 을도 아니고 병이나 정쯤 돼요.(웃음) 여성 고용률 높이기와 일ㆍ가정 양립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했지만, 다른 부처에서도 제1 과제로 생각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희가 더 애써야죠. 국무회의에서 이런 얘기 하겠다고 관련 부처 장관들께 미리 말씀 드리고, 일이 잘 풀리면 실무자 이름까지 거론하며 "이 분들의 도움으로 이 건이 해결됐다"고 보고를 하죠. 계속 그러려고요.
-특히 어느 장관이 잘 도와주나요?
많이들 도와주세요. 기획재정부 장관, 고용노동부 장관, 총리실장…. 특히 총리께서 제 '빽'이 되어주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죠.(웃음)
대통령의 '깨알 리더십' 덕인지, 총리 '빽' 덕인지, 실세 장관의 '힘'인지, 정부 내에서 여성가족부에 대한 대접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며칠 전 여성경제활동 확대가 왜 시급하며 정부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세세히 밝힌 장문의 글을 보내 조 장관을 감동시켰다. 아이들은 다쳐도, 배가 고파도 무조건 "엄마"를 외친다는 내용의 광고 감상평으로 시작한 글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정부의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녀 가사 분담, 기업의 가족친화 경영, 양성평등 문화의 확산일 것입니다. '지금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남성일지 모르지만 향후 우리경제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여성'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여성을 응원하는 문화가 자리 잡길 기대해 봅니다. 이제 우리경제가 "엄마"라고 외쳐야 할 때입니다."
-여성 대통령의 첫 내각에 여성 장관이 둘뿐인데 전 정부와 비교해도 너무 적지 않나요?
대통령께서 오래 생각한 그림이 있었던 것 같아요. 후보 시절부터 인사는 능력과 전문성이 첫째다, 지역이나 학교가 너무 편중됐다면 일부 조정할 수 있지만 그게 첫 번째 고려 대상은 아니라고 하셨죠. 각 분야에서 여성의 대표성을 어떻게 높일지 약속한 게 있으니 그걸 실천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개각을 할 때 여성 장관도 많이 나올 거라고 봐요.
-대통령이 청문회 낙제생인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의 임명을 강행하며 여성 배려 얘기를 했어요. 낙마하면 여성 장관이 하나만 남아 부담이 됐을 거란 분석도 나왔죠.
대통령께서 윤 장관을 끝까지 기용하려 한 게 여성이어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윤 장관이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지만 기회를 주면 능력과 전문성을 발휘할 거라고 확신한 거죠. 여성 장관이 왜 하나가 되면 안 되겠어요? 둘이 많은 것도 아닌데.
-'윤진숙 파동'을 보면서 많은 여성들이 상처를 받았어요. 여성은 시험을 망쳐도 저렇게 구제되는구나, 그런 나쁜 인상을 줬잖아요. 이 상처를 어떻게 보상할 건지….
(난감한 듯 크게 웃으며) 제가 보기에는 윤 장관이 굉장히 빨리 자리를 잡고 신뢰감을 주고 있는 것 같은데요. 좀 지켜봐 주시죠.
-정치인으로서 박 대통령에게 가장 본 받을 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너무 상투적인 말이 됐는데, 진정성이에요. 국민을 표를 주는 유권자로 보지 않고,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진심으로 다가가죠. 또 무슨 일이든 생각이 분명해요. 그냥 대통령이 되고 싶다가 아니라, 왜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 대통령이 되면 무슨 일을 어떻게 할지 오랜 세월 생각하고 정리한 것을 실천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대선 때 SNS 홍보 담당자가 오늘은 이런 발랄한 말씀을 해주시면 좋겠다고 건의했더니, 내가 하루 종일 어디 가서 뭘 하는지 국민이 다 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런 말 하면 이상하지 않느냐는 거예요. 이렇게 과장도, 연출도 안 하고 이길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했는데, 그게 통하더라고요. 제가 국회의원 끝나고 소속(계파)도 없는 처지에 제 모든 경험과 지식을 쏟아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를 후보가 제공한 거죠. 아무리 다급해도 부침이 있을 때도 한결 같은 진심으로 차곡차곡 믿음을 쌓아가는 것, 참 어렵지만 배워야겠다 싶어요.
-그런데 왜 자꾸 불통 논란이 일까요? 얼마 전 조 장관이 본인은 소통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남녀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는데.
또 얘기해 봐야 그렇고…. 제가 평가하거나 원인을 분석할 입장은 아니죠.
조 장관의 말처럼 여성가족부 업무는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데다, 사회적 인식과 문화의 변화가 뒷받침돼야 하는 일이라 정책 추진을 둘러싸고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러다 보니 일 하는 게 어딘가 어설픈 아마추어 같다는 비판도 듣는다. 취임 초 논란이 됐던 '손주 돌보미' 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두 자녀 이상 맞벌이 가정의 0세 유아에 한해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들에게 월 40만원의 수당을 지급한다는 내용인데, 검토 단계에서 바로 시행할 것처럼 보도돼 곤욕을 치렀다. "서울 서초구에서 시행하는 사업이 방송에 보도돼 문의가 많기에 검토를 시작했어요. 수요자 입장에서는 대환영하지만, 형평성 문제도 있고 국가에서 지원해 여성의 보육 책임을 덜어주려는 마당에 다시 가정에 책임을 지우는 건 옳지 않다는 철학적 배경을 갖고 반대하는 분들도 있어요. 한다면 어떤 체계와 범위, 속도로 할 수 있을까 전문가 의견을 듣고 시뮬레이션을 해 보는 단계예요."
-현재 9.3%인 4급 이상 여성 공무원 비율을 2017년까지 15%로 늘리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방안이 뭔가요? 여성 인력 풀이 한정된 상황에서 역차별 얘기가 나오진 않을까요?
인수위원회에서 확정한 건데, 안전행정부에서 각 부처와 협의해 현재 여성 공무원 현황을 바탕으로 실현 가능한 목표치를 정했어요. 해마다 얼마나 지켰는지 따져 부처 평가에 반영하는 식으로 독려를 할 거고요. 역차별 소리까지 들으며 수치를 맞추겠다는 게 아니라, 여성들이 임신, 출산, 육아, 가사로 인해 직장에서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오해를 받고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하려는 거죠. 그러려면 인사평가의 틀을 바꿔야 해요. 기업이나 사회의 분위기를 당장 바꿀 수 없으니 정부 기관이 솔선수범해 변화를 끌어내자는 거예요.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해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정책은 뭔가요?
한가지 만병통치약은 없어요.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톤을 한껏 높여)모~~~든 것을 해야 해요. 기본 원칙은 여러 대안을 제시해 여성들이 자신한테 맞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5월 들어 '100발자국' 이름 걸고 현장 네 곳을 찾았는데, 그 중 두 곳이 여성친화경영을 하는 중소기업과 외국계 기업이었어요. 경영문화를 바꾸려면 고통스러운 노력이 필요해요. 다들 안 된다고 하는데, 이들은 어떻게 바꿨는지, 하면 뭐가 좋은지 듣고 싶었어요. 잘 모르면서 기업들더러 이래라 저래라 할 순 없잖아요. 여성친화경영을 비용의 관점에서 손해라고 보는데, 이 회사 CEO들은 밑에서 올라오는 창의력과 헌신, 열정이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해요. 모범 사례를 많이 찾아 탄탄한 철학과 전략, 노하우를 갖추고 '이런 중소기업들도 하는데 대기업에서 왜 못합니까' 그렇게 요구해야죠.
-그런 노력들이 이 정부 5년 안에 결실을 볼 수 있을까요?
한 번 보세요, 가능한지.(웃음) 제가 94년에 첫째, 97년에 둘째를 낳아(딸만 둘이다) 키우면서 10년쯤은 정말 고생 많이 했어요. 국공립 어린이집이나 보육수당 같은 건 상상도 못했던 시절이니까. 그런데 5,6년 만에 이렇게 바뀌었잖아요. 여성들이 관리자로 많이 올라가면 정책으로 밀어붙이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거예요. 길어야 10년이에요.
-그때 되면 여성가족부는 해체하는 건가요?
이름이 바뀌겠죠. 사회통합부 어때요? 스웨덴이 75년 양성평등부를 만들었는데 사민당이 계속 집권하면서 20년 만에 양성평등지수 세계 1위를 달성한 뒤 이름을 그렇게 바꿨어요. 여성가족부의 업무를 관통하는 비전이 뭘까 고민하다 생각한 것이 '차이를 외면하면 차별을 낳는다'는 말이에요. 여성뿐 아니라 청소년, 가족 문제에서도 차이가 차별이나 소외로 가지 않게 하는 게 우리 일이에요. 그런 점에서 사회통합이 궁극적인 지향이죠.
-여성가족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간판을 바꾸는 겁니다, 이런 얘기네요.
그러네요.(웃음) 양성평등을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빨리 만들어야죠.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엄마 가산점제'(출산ㆍ육아로 직장을 그만둔 여성이 재취업할 때 가산점을 주는 것)가 논란이 되면서 '군 가산점제'를 재추진하자는 움직임도 있는데, 여성가족부 입장은 뭔가요?
'군 가산점제'는 직업선택의 자유나 평등에 심히 위배된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서 이미 위헌 판결이 났잖아요. 헌재의 판결을 존중해야죠. 엄마 가산점제는 여성단체들에서도 반대 입장을 낸 걸로 아는데, 국회에서 그리고 언론 등을 통해 논의가 성숙되는 기간이 필요하다고 봐요. 지금 부처의 견해를 단정적으로 내는 것은 적절치 않아요.
조 장관은 '엄친딸'의 전형이다. 학력(서울대 외교학과, 미국 컬럼비아대 법학석사)과 경력, 재력(재산신고액 50억557만원, 국무위원 중 최고)에 더해 미모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부러움에는 질시가 섞이게 마련인데, 뛰어난 친화력이 중화제 역할을 한다.
그런 그도 여성이자 엄마로서 많은 고초를 겪었다. 오죽하면 "다시 태어난다면 곤충이라도 좋으니 수컷으로 태어나고 말겠다"고 했을까. "국회의원 되고 이 땅의 여성들, 엄마들 고충 덜어주는 게 여성의원으로서 숙제 같다는 얘기를 했는데, 2년 가까이 대변인 맡고 그 뒤엔 주로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활동하느라 여력이 없었죠. 생각지도 않은 장관을 맡고 보니 그 약속 지키라는 뜻인가 싶어 찡하더라고요."
-이력만 보면 '마른 땅'만 밟아 온 사람이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고통을 잘 헤아릴 수 있을까 하는 시각도 있더군요. 반론을 한다면?
저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현장 가면 얘기 듣다 우느라 뭘 못해요. 미혼모 보호시설,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에서도, 아이들의 또래상담 경험담을 들을 때도 그랬죠. 저를 울리고, 해결책을 고민하게 하고, 다른 부처나 국회를 설득할 힘을 주는 모든 분들이 저의 멘토라고 생각해요. 물론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전적으로 국민의 몫이지요.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항마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장관 시킨 것도 경력 쌓게 하려는 박 대통령 구상이라는 기사까지 나왔던데.
장관 된지 이제 겨우 두 달이에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정책을 만들까 고민하느라 하루 24시간도 모자랄 지경이에요. 다른 생각 할 처지도 아니고, 그럴 겨를도 없습니다.
선임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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