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부국 카타르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필리핀 출신 돌로레스는 아이 일곱 명을 둔 엄마다.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2011년 카타르로 건너와 청소, 요리 등 가사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일은 힘들고 휴식은 부족하다. 돌로레스는 "집 주인이 단 하루도 휴가를 주지 않는다"며 "다른 집도 사정이 비슷해 카타르에서 일하는 많은 필리핀 가정부들이 도망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중동 산유국들이 모여있는 걸프 지역에는 돌로레스와 같은 동남아 출신 가정부들이 무려 200만~300만명이나 된다. 이들은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등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에 따르면 걸프 지역의 동남아 출신 가정부들은 하루 9~15시간, 일주일에 60~100시간 가량 일한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지만 임금은 터무니 없이 적다. 필리핀 출신 한 가정부는 당초 월 1,700리얄(467달러)을 받기로 하고 카타르에 왔으나 실제로는 월 900리얄(247달러) 정도를 손에 쥘 뿐이다. 인권단체의 한 관계자는 "걸프 지역에서 일하는 가정부들 중 상당수가 불충분한 식사에 휴일도 없이 일하면서도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집 주인의 학대를 받는 경우도 많다. 한 인권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2007년 1월부터 2008년 8월까지 레바논에서 매주 최소 한 명의 가정부가 사망했는데 자살이 절반 가량으로 가장 많았으며 일하던 곳에서 도망치다 건물에서 떨어져 죽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정부로 일하던 라한다 푸라지 아리야와티에는 집주인 부부로부터 가혹한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부부는 못과 바늘을 아리야와티에의 몸에 집어넣기도 했다.
동남아 출신 가정부들은 이런 상황에서 사실상 노예처럼 지내고 있다. 마음대로 일자리를 옮길 수 없는데다 집주인의 눈밖에 나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본국으로 쫓겨나기도 한다. 카타르에서 가정부로 일하던 인도 출신 실파는 고용주로부터 2년 반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도망을 치려다 붙잡혀 2011년 감옥에 갇혔고 출소 후에는 인도로 강제 추방됐다.
알자지라는 걸프 국가에서 동남아 가정부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바뀐 것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다만 걸프 지역 국가 모임인 걸프협력협의회가 가정부, 요리사, 정원사, 운전기사 등 지금까지 법의 사각지대에 있던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10월 중 노동법 개정을 논의하기로 한 정도가 있을 뿐이다. 마무드 압둘라 파라므지 카타르 노동부 차관은 "동남아 출신 가정부들이 법의 혜택을 받지 못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며 "걸프 국가들의 협의를 통해 2011년 국제노동기구가 채택한 가사 노동자 협약 등 국제 노동 기준에 맞게 근로 조건을 보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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