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6개월 만에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만 해도 진길순(44)씨의 소망은 오로지 건강뿐이었다. 항암치료와 골수이식수술 등 10년간의 투병 끝에 완치 판정을 받은 2006년 무렵 그에겐 또 다른 바람이 생겼다. ‘엄마’가 되고 싶은 것이었다. 담당 의사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며 임신은 힘들다고 했다. 진씨는 그래서 엄마가 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 입양을 결심했다.
주변에서는 건강 걱정에 입양을 만류했다. 진씨도 ‘병이 재발하면 어떡하나’ ‘내 욕심 때문에 입양했다 아이를 잘못 키우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에 주저했지만 남편 강정훈(44)씨의 격려에 힘입어 2007년 봄 입양기관을 통해 아들 강지원(7)군을 만났다. 생후 25일 된 갓난아이였다.
“처음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 타는데 마치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퇴원하는 기분이 들면서 벅찬 감정에 울컥하더라고요. 그 때 입양 전 했던 각종 걱정이 싹 사라지고 입양도 공개하기로 결심했죠.”
예전엔 아이와 주변 사람들에게 입양 사실을 알리기를 꺼려했지만 요즘은 공개입양이 증가추세다. 아이가 뒤늦게 입양 사실을 알고 겪을 수 있는 정체성 혼란을 덜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홀트아동복지회에 따르면 2001년 국내입양의 25.3%에 그치던 공개입양은 10년 만에 56.6%(2011년)로 2배 이상 늘었다.
진씨는 “입양한 다음날부터 분유를 먹이면서 ‘난 너를 낳아준 엄마는 아니지만 입양한 엄마’라고 말하는 연습을 했다”며 “그래서인지 지원이는 어렸을 때부터 입양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아들 키우는 재미에 푹 빠진 진씨 부부는 2년 후 딸 규원(5)이도 입양했다. 부부는 “재입양을 하면 둘째는 입양 교육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며 “아이가 자라 ‘나만 입양했어?’라고 물어보는 순간이 올 때 ‘오빠도 입양했다’고 말해주면 쉽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사회에서는 입양을 슬프고 안타까운 일로 여기는 게 사실이다. 진씨는 “주변에서 무심코 아이들한테 ‘너희는 엄마 아빠한테 고마워해야 한다’고 하거나 우리 부부에게 ‘정말 대단한 일 하신다’라고 말하면 달갑지 않다”며 “그런 말 저변에 입양은 불쌍한 아이들을 거둬 키우는 일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 부부에게 입양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가정을 꾸릴 뿐, 행복한 일이다.
진씨는 이제 아이를 돌보기 위해 건강에 신경을 쓰고 있다. “아이들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지 않고 뿌리가 단단한 나무처럼 자라는 게 바람”이라는 진씨 역시 입양 후 더 단단해진 삶을 살고 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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